“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고려시대의 반가사유상이 훨씬 더 아름답고, 조각적이지 않습니까. 반가사유상이말로 우리 미술 교과서에 실려야 합니다. 현대 조각은 한계에 부딪혔습니다.”조각가 이영섭(39)씨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각의 논리를 전복하려는 작가다. 그는 나무나 돌을 새기거나 깎아서 조각하지 않는다. 대신 ‘발굴’해서 조각을 완성한다.
신라 경덕왕 때(764년) 세워져 고려 광종 이후 최대 사찰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덩그렇게 터만 남은 경기 여주 고달사지(高達寺址).
고향 마을 인근인 이 절터 옆 폐가를 사들여 이씨는 거처로 삼았다. 5년 전이다. 10년 넘게 해오던 데라코타 작업에 회의가 들어 당분간 좀 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무심코 지켜보던 고달사지 유적 발굴 현장이 그의 작품세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절터 부근에 나뒹굴던 동자상, 발굴되어 나오는 석물과 기와 파편들을 보면서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목수였던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장인 기질, 어린 시절 조부의 묘비 앞에 놓여있던 허물어진 화강암 동자석을 어루만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조각을 깎는 게 아니라 파내기 시작했다.
이씨는 자신이 머물던 폐가의 마당을 파보았다. 땅은 마사토(磨砂土)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달사지에서 발굴되던, 천 년 넘은 세월의 때가 묻은 석조물들의 거칠고도 정감 넘치는 질감이 드러났다. 이씨는 자신의 앞마당 마사토에다가 이미지를 드로잉하고 그 형상을 파낸 후 시멘트와 개울모래를 버무려 작품을 ‘매장’했다.
그것을 다시 ‘출토’한 조각은 이전까지의 자신의 작업과는 확연히 달랐다. 과거가 시간을 거슬러 현재에 되살아난듯했다. 콘크리트 조각에 마사토가 섞여들어 마치 고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질감이 나타났다.
마사토의 지층, 돌과 흙의 맥이 나이테처럼 그대로 찍혀나왔다. 이씨는 “전혀 새로운 조각의 발견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가 조각한, 장식성과 복식을 지극히 단순화한 동자상이나 모자상은 신라시대 토우에 배어있는 해학의 미 혹은 반가사유상의 고졸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드러난 구수한 무기교의 기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가 파묻었다 캐낸 컴퓨터 형상의 조각은 천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나타난 고대문명의 유물처럼 보인다.
“옛 동자상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품성을 그대로 표현한 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원형적인 얼굴을 이씨는 동자상과 모자상에서 찾는다. 고달사의 절 이름의 유래는 ‘고달’이라는 석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고달은 지금은 국보 4호로 지정된 고달사지부도 등 고달사의 석믈을 완성한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는 전설의 인물이다. 이씨는 “고달을 닮으려 한다”고 말했다. “과거를 미래로 이어주는 전달자, 그것이 조각가”라고 그는 자신의 작업의 개념을 설명했다. 3~13일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02-549-7574~6)에서 이씨는 5번째 조각전을 연다.
여수=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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