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났다. 온 세상을 열정과 흥분과 감동의 잔치마당으로 만들었던 21세기 첫 월드컵은 아쉬움 속에 지나갔다. 하루 아침에 변해버린 세상이 실감나지 않듯, 지나간 한달 동안의 변화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우리가 정말 그렇게 멋지게 지구촌 최대의 행사를 치러낸 것인가. 정말 그 엄청난 월드컵 효과라는 열매를 따먹게 되는 건가.
외국 언론 매체들이 다투어 쏟아내는 한국예찬과, 그로 인한 이미지 변화를 계량화할 수 있을까.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월드컵의 직ㆍ간접 경제효과가 1년 국가예산에 필적하는 100조원에 달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세계 30위 권을 맴돌던 국가 이미지가 경제규모에 걸맞게 12~13위로 치솟게 됐다는 평가도 있다.
해외 무역관을 통해 외국 바이어 1,000여명을 상대로 실시한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월드컵 기간 중 한국의 국가 이미지 점수는 평균 81.9점으로, 대회 전보다 9.4점이나 상승했다 한다.
그 많은 수확 가운데 나는 우리 모두가 놀라고 만 민주시민 역량과 체질화한 자신감이 가장 값지다고 단언하고 싶다.
백만 군중이 모인 시청광장 녹지대의 꽃 한 송이 나뭇가지 하나 손상되지 않은 질서와, 장대비 속에서 뒷사람을 배려해 우산을 펴지 않은 시민의식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6월 10일 대구경기장, 6월 25일 상암 경기장 스탠드에서, 그리고 퇴근길 광화문 네거리 붉은 인파 속에서 나는 번번이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이번 월드컵 대회의 진정한 승자라는 것을.
구두를 밟히거나 떠밀려 넘어지지나 않을까, 만일 경기에 지면 큰 소란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군중 속에서 내내 그런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암동 가는 지하철 역에서부터 뇌리를 점령한 그 걱정은 기우였다.
입장하면서 길게 줄을 서있는 동안,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인파에 파묻혀 맥주 집을 찾아가는 동안 한번도 구두를 밟히지 않았고, 떠밀리지도 않았다. 홈 구장 관객이 경기에 지고도 그렇게 양순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례를 이 날 목격했다.
아무런 위축감을 느끼지 않는 듯 ‘대~한밍구’를 외치는 독일인들을 보면서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느꼈다.
지난 날을 생각하면 이건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다. 1960년 1월 설날 귀성객이 몰린 서울역에서 31명이 압사한 참사가 일어났다. 먼저 열차를 타려고 뛰던 승객 한 사람이 계단에서 넘어지자 뒤 따르던 인파가 덮친 것이 원인이었다.
그 전해에는 부산에서 시민위안의 밤 행사장에서 67명이 압사했고, 개학 날 초등학교 계단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80년대까지 일어났다. 경기장 스탠드의 잡상인 횡포와 무질서, 관중의 음주소란은 또 어떠했던가.
그런 기억을 가진 한국인에게 일본인의 절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로 보였다. 1982년 1월 1일 도쿄 메이지(明治) 신궁은 온종일 300 만 명이 넘는 참배객으로 붐볐다.
그 인파 속에서 구두를 밟히기는커녕, 옆 사람과 옷깃 한번 스치지 않은 그 불가사의한 질서를 경험하면서 등골이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이러니 우리가 당할 수 밖에 없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렇게 되었다.
경기가 끝난 뒤 축구장 앞에서 밤늦도록 생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그 이유를 분석했다. 결론은 ‘W 세대’ 또는 ‘R 세대’라 명명된 10대~20대 젊은이들의 자신감과 건강한 공동체 의식이었다.
전쟁과 굶주림을 모르는 그들, 데모진압 경찰에 쫓겨본 일도 없는 그들은 가슴 가득 여유를 품은 걸까. 이 세상 어디에도 굽힐 것이 없고, 그래서 머뭇거릴 까닭이 없는 걸까.
한일 월드컵은 온 한국인과 지구가족에 희망을 보여준 대 서사시였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기자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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