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선수들과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기쁨의 눈물로 엮어낸 한국 축구의 신화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그러나 감동의 순간도 잠깐이다. 어느새 우리 곁에는 답답하고 불안한 경제 현실이 와 있다. 경제의 심장이라고 하는 증권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을 치더니 끝내 700선까지 내려왔다. 지난 주말에 반등을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증권시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 그러면 경영이 어려운 기업은 부도가 나고 일반 기업들은 투자를 못한다.
더욱 걱정은 일반 투자가들이다. 재산증식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고 좌절과 허탈감이 쌓인다. 경제성장의 원천인 소비를 하려 해도 돈이 없다.
무엇보다도 뜻하지 않은 원화 절상으로 수출의 길이 막히고 있다는 점이다. 달러당 원화 환율이 1,200원 선까지 내려오자 수출을 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
이 틈을 타고 중국은 싼 임금을 무기로 수출의 인해전술을 펴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설 땅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월드컵 개막 전만해도 생기가 돌던 경제가 왜 이렇게 변했나? 원인은 미국 경제다. 회복을 장담하던 미국 경제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신경제의 주역인 정보통신(IT)산업의 회복이 지연되면서 기업들의 실적이 극도로 부진하다.
한때 하이닉스를 사겠다고 나섰던 미국의 최대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여기에 38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월드컴사 회계조작 사건이 터지자 증권시장의 투자심리가 공황 상태이다.
거대한 군함처럼 세계 시장을 누비던 미국 경제가 밑바닥에 금이 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추가 테러의 위협이 계속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을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미국 경제가 조금만 흔들려도 요동을 치는 우리 경제가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즉시 증권시장이 비틀거리며 자금 흐름의 맥을 끊고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원화절상)하여 수출의 목을 조이고 있다.
경제는 이처럼 숨을 몰아 쉬고 있는데 정부는 태평이다. 정부는 하반기 성장률을 5%에서 6%로 높여 잡았다. 상반기에 우리 경제는 내수 경기를 살려 성장을 이끌었지만 하반기에는 수출을 살려 성장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며 투자와 수출 활동을 활성화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또 정부는 물가를 3%선에서 안정시키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재정지출을 효과적으로 조정하여 물가도 잡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경제를 불필요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경제 주체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하면 경제는 정말 비관적으로 된다. 이에 반해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경제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경제는 희망이 보이고 살아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부는 경제의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자칫하면 금융 마비가 오고 경기회복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서 낙관론만 펴면 경제를 좌초 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
정작 희망을 갖고 나서야 할 사람들은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이다. 우리는 월드컵을 통하여 무엇이든지 해 낼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또 모두가 하나가 되는 감동을 나누었다. 우리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만방에 알렸다.
이제 우리는 수출촉진과 투자유치를 위해 해외로 달려나가야 한다. 또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첨단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더 나아가 뜨거운 화합의 정신으로 노사갈등을 극복하고 신바람 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답답한 경제를 우리 힘으로 뚫는 진정한 월드컵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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