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 내내 퍼붓던 장마비가 불운의 전조였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팽팽한 균형이 이어지던 후반 22분. 히바우두가 왼발 슛, 대포알처럼 날아온 공을 올리버 칸이 쓰러지며 품에 안았지만 비에 젖어 미끄러운 탓에 그만 놓치고 말았다. 호나우두는 흘러나온 공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꽁꽁 닫혀있던 골문을 열었다.준결승까지 6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1골만 내주는 철벽수비로 독일을 결승전까지 이끌었던 칸이 무너지면서 승부의 추는 순식간에 브라질로 넘어갔다.
전반 호나우두와의 단독대결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맞선 칸은 12분 뒤 호나우두에게 맥없이 추가골을 내줬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뼈아픈 실수의 순간을 되새기듯 골대에 기대 앉은 채 허공만 쳐다보았다.
비록 패배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지만 칸은 이날 경기에 앞서 한일월드컵 무대에서 선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야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98년 프랑스 대회서 프랑스의 파비앙 바르테즈가 세운 역대 월드컵 최소실점(2실점)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준결승전까지 6경기서 내준 1실점은 월드컵사에 또 하나의 위대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75년 독일 칼스루헤 유소년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한 칸은 94년 유럽 최고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들어갔고 곧바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걸출한 스타 안드레아스 쾨프케에 가려 94년, 98년 월드컵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하는 등 빛을 보지 못했다.
시련 속에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는 98년 쾨프케가 은퇴하자 곧바로 대표팀 주전자리를 꿰찼다.
2001년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승부차기서 무려 3개의 슛을 저지하는 신들린 플레이로 월드스타로 떠올랐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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