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에 대처하는 시스템은 만일의 경우까지 대비해 한치의 빈틈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원 구성을 하지 못해 ‘식물국회’로 불리는 국회와 정치권의 모습은 이런 명제에서 한참 거리가 멀다.30일 낮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회담을 가진 뒤 모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합의사항을 내놓았다.
합의점은 ‘8일 오전 10시에 원 구성을 하기로 했다’는 단 한가지 원칙이었다. 서해교전이 발생한 상황에서도 자리 싸움으로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선출을 미룰 경우 여론의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해 서둘러 내놓은 카드였다.
이에 대해 “만일 금주 중에 서해교전 이상의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법적 권한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국회 시스템이 무엇이냐”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양당 총무는 “16대국회 전반기 국방위원들의 간담회를 소집하거나, 급하면 임시국회를 소집해 임시의장을 뽑으면 된다”고 궁색한 해법을 제시했다.
우선 후반기 국방위원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반기 국방위원들의 간담회는 비공식회의로서 아무런 의결을 할 수도 없다.
전 국방위원들은 29일 저녁 8시부터 서해교전과 관련한 간담회를 갖고 3시간 40여분동안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을 추궁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 공세를 펴는데 치중해 결과적으로 분주히 현장 업무를 챙겨야 할 군 관계자들을 장시간 국회에 묶어놓는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또 임시국회 소집론에 대해서도 국회 관계자는 “임시 의장과 정식 의장을 뽑는 절차가 거의 같기 때문에 여야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임시의장 선출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헌법 제76조에는 대통령이 국가 안위와 관계되는 교전상태에서 ‘명령’을 발동할 수 있고, 국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도록 규정돼있다.
국회는 이런 경우에 대비한 체제를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달여 간 원구성을 미뤄온 정치권이 다시 8일 동안 원구성을 연기하기로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가 위기상황 대처보다 당리가 먼저냐”는 비판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김광덕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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