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환희와 열광으로 달구었던 월드컵 경기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이번 월드컵은 역사상 최초로 두 나라가 공동으로 개최한 행사라는 기록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성공적 이벤트였다.
필자는 한일공동개최 월드컵 폐막식을 지켜보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필자가 외무부 장관직을 맡았던 1994년, 당시 고노 요헤이 일본 외무성 장관과 양국 공동개최 월드컵이라는, 당시에는 민감한 아젠다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이 행사를 두 나라가 개최한다는 발상은 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서로 인접한 유럽의 국가들과 달리 바다를 사이에 둔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가졌었다.
세계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은 성공적으로 월드컵을 치러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필자는 여기에서 유형적 성공 요소보다는 자칫 지나칠 수 있는 무형적 측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혹자는 월드컵을 수 조원대에 이르는 경제적 부수 효과에 큰 비중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정서적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월드컵이 우리들에게 던진 키워드나 남긴 자산은 무엇인가에 대해 차분하게 정리하고 그것들을 소중하게 새겨 담아야 할 때이다. 모처럼 어렵게 얻어낸 이 엄청난 범국민적인 현상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자산은 월드컵이 국민 모두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체와 ‘한국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는 것이다.
한국 축구가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하나같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한없는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태극기를 보며 울렁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던 때가 과연 얼마나 있었단 말인가.
둘째, 월드컵은 우리 모두에게 우리나라가 왜 존속·보호되어야 하며 우리 국권의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응원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이들이 보여준 국가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연대의식은 장차 우리나라를 지켜내는 더 없는 자산이 될 것이다.
셋째, 월드컵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발현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국민 모두가 연령 종교 이데올로기 남녀 지역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생애 최고의 경험을 하였다.
전국에서 700만 인파가 거리를 물들인 것은 경이로움이 아닐 수 없다.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키고 쓰레기를 치우는 응원단들의 행동은 국민 모두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어주었다.
넷째, 이번 월드컵은 우리 국민이 세계화의 실험에서 당당히 성공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만큼 우리 땅에서 난 음식, 사람, 정서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히딩크라는 네덜란드인을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과감히 영입해서 성공하였다. 외국인을 소위 ‘아웃소싱’하여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를 이룬 것이다.
우리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섯째, 월드컵은 우리로 하여금 활활 끊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게 하였다. 전체의 힘은 부분의 힘보다 강하다. 몇 만명이 거리에 모여 응원하는 것보다는 수십 만명 아니 수백 만명이 함께 응원하는 힘은 더욱 폭발적이다.
어느 라디오의 진행자가 6월 말은 한반도에 장마전선이 형성될 때인데 이렇게 맑은 이유는 아마도 응원단의 뜨거운 함성과 열기가 고기압 전선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농담도 하였지만, 우리 국민이 만들어낸 시너지는 ‘성공 월드컵’을 이미 보장하였던 것이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 국민의 고질적인 박탈감을 만족감으로, 내재적인 저항의식을 협력과 연대의식으로 바꾸는 대 반전을 이루어냈다. 이것은 저력과 지구력이 뒷받침된 국민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월드컵의 성공 뒤에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북한도 이번 축제에 함께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제 축구경기가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 것인가 걱정들 한다. 그러나 축구경기에서도 공수전환이 빠른 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우리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前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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