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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이응준 시집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빛을 갈망하는 '어둠의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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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이응준 시집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빛을 갈망하는 '어둠의 방랑자'

입력
2002.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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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체코어로 까마귀라는 뜻이다./ 나는 열여덟에/ 그런 이름을 갖고 싶었다.// 타클라마칸은 위그루어로/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나는 서른이 되던 날 밤/ 차라리 그런 이름이었으면 했다’(‘칠 일째’에서)이응준(32)씨가 시집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세계사 발행)를 펴냈다.

그는 단편집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등을 통해 독특한 상상력을 선보인 소설가로 잘 알려졌지만, 실은 시인으로 출발한 문인이다. ‘낙타와의…’는 그가 7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갓 서른을 넘긴 젊은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등에 짐 지워진 젊음이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것 같다.

그는 20대를 “얼마나 더 어두워야 하는지, 얼마나 더 밑으로 가라앉아야 하는지 알 수 없던” 시절이라고 돌아본다.

그러나 막 20대가 지난 뒤에도 시인은 여전히 피를 흘리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떠돈다.

시 50여 편 곳곳에는 피의 붉은 빛과 어둠의 검은 빛이 배어 있다.

‘붉은 꽃이 피묻은 흰 새처럼 울고/ 검은 비가 잠 못드는 자들의 지붕을 적시고’(‘소설’에서) ‘붉은 팥죽처럼 어두운 이 세계에서/ 죽었다’(‘동지’에서) 그래서 새 시집을 좇다 보면 어느 순간 만나게 되는 시 한 구절에서처럼 탄식이 나온다. ‘-아, 너는 아프구나. 꽃나무 말라 죽어버린 오후구나.’(‘해후’에서).

그는 “그렇죠. 감각이 늘 열려 있다는 건 끔찍한 노릇이죠”라고 읊으면서 헤맨다.

오만한 목소리다. 그러나 오직 나이 서른 즈음이어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젊음의 무게는 어떻게 덜어지는가.

그의 시는 스스로 해답을 찾고 있다. 20대가 지난 시인은 피와 어둠 사이에서 환하게 비치는 흰 빛을 본다. 그것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다.

‘당장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은/ 나중의 그 영혼으로 사랑하자.// 밤은 검어야 할 텐데/ 그래야 될 텐데/ 오늘은 이상하다.// 너무 환해 눈이 멀고 말 것 같다.’(‘백야’에서) ‘나는// 수만 그루의 흰빛 나무들로 서 있는/ 오직 하나의 흰빛 나무만을// 본 것이다’(‘그대’에서).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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