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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 신인철 붉은악마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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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 신인철 붉은악마 회장

입력
2002.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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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김동영 사회부차장“그냥 한바탕 재미있게 놀고 싶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오히려 축구가 제 인생에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싫어요.”

2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협회에서 만난 ‘붉은 악마’ 신인철(申寅澈ㆍ34) 회장이 대뜸 던진 첫 마디는 뜻 밖이었다. 하지만 얘기를 계속하면서 비로소 그 의미가 다가왔다.

조직되거나 의도되지 않은 순수함과 자발성, 그리고 신명나는 놀이판. 그 것이 월드컵 기간 내내 전 국민을 붉은 열정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붉은 악마의 본질이자 힘이었다.

인터뷰는 월드컵 대장정의 대미인 터키와의 3·4위전을 앞두고 북새통을 이루고있는 축구협회 건물 4층 붉은 악마 사무국을 피해 1층 로비에서 이뤄졌다. 신씨는 인터뷰 중에도 연신 회원들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 이번 월드컵을 통해 붉은 악마는 전 세계적으로 경이로운 주목을 받았다. 자체 평가를 하자면.

“기대했던 것이 다 이루어져 기쁘다. 건전한 응원문화를 전국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밑거름이 된 것을 자부한다. 월드컵 응원 준비는 중앙 사무국이 한 것이 아니다. 경기가 열리는 각 지역 지부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했다. 하지만 우리보다 월드컵 성공에 더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다.

자원봉사자, 경찰, 소방관, 청소부, 조직위 관계자 등 모두가 혼연일체가 된 결과다. 한국일보도 ‘붉은 옷 입기’ 캠페인을 벌이지 않았는가. 어쨌든 그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데 만족한다.”

- ‘AGAIN 1966’ 등의 카드섹션과 “대~한민국” 구호 등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아이디어팀이 따로 꾸려져 있다. 누구의 아이디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가 갖추어 졌는가가 중요하다. 조금 전까지도 3ㆍ4위전 카드섹션 아이디어 때문에 한바탕 싸우고 왔다. 누구나 자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자발적으로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순수한 모임의 성격은 우리의 장점이자 큰 힘이다. 우리가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다.

- 붉은 악마를 창설하게 된 계기는. 그리고 시작할 때 오늘과 같은 거대조직을 예상했었나.

“연극, 영화도 좋은 관객이 있으면 잘된다. 축구도 좋은 응원이 있으면 축구 실력도 늘고 축구 문화도 한단계 발전할 거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회원은 현재 22만명이다. 솔직히 월드컵 때 크게 터질 것이라고 처음부터 예상은 했었다.

모임이 커지면 스타보다 여러 사람의 협동이 중요한데 붉은 악마 일은 강요에 의하거나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하는 일이므로 가능했다.”

- 붉은 악마의 운영방식은 어떤 것인가.

“이번 월드컵은 워낙 특수하고 국가적인 행사였기에 총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운영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자발적인 조직이다. 힘을 중앙에 모으기보다 이를 분산해 ‘즐기는 축구’를 지향하고 있다. 회사원들은 월차도 내고 나 같은 경우는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는 붉은 악마 일을 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몇 명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응원이라는 정해진 틀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교대로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구는 대구지부, 인천은 인천지부 회원들이 주축이 돼 행사를 진행하는 식이다. 월드컵이기 때문에 자기 역량 이상으로 일을 했을 뿐이다. 이번만 그럴 것이다.”

- 그동안 붉은 악마를 이끌면서, 또 이번 월드컵 응원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울트라 닛폰과 비교해) 왜색 응원이라는 비난, 빨갱이 응원이라는 오해, 종교 단체에서 이단으로 몰아갈 때가 가장 힘들었다. 특히 우리의 사상을 의심하거나 기독교 단체에서 사탄이라고 몰아갈 때는 난감했다. 때문에 건전하게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고 행동도 늘 조심했다. 또 하나는 재정 문제다.

초창기에는 회원들이 회의를 하러 모였어도 라면 끓여먹을 돈이 없어 쩔쩔매기도 했지만 회원 수도 적고 모두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조직이 커지면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만한 재정이 늘 부족했다.”

- 붉은 악마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CF 계약, 붉은 티 판매 수입 등으로 100억원대의 수입을 올렸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내가 한달에 붉은 악마 일하면서 받는 돈이 7만원이다. 시급 2,000원으로 계산한 액수다. 모두 자원 봉사지만 사무국을 지키는 대학생에게만 시급 2,000원을 지급하고 있다. 그래봐야 고작 월 10여만원이다. 교통비와 식비도 안되는 돈이다. 한달 사무실 운영 등 경상비만 500만원 정도 든다.

그렇게 계산하면 1년에 6,000만원. 거기에 초대형 태극기 등 응원 준비를 합치면 1년에 1억 5,0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따지면 우리가 CF로 번 돈은 고작 3년이면 바닥난다. 당장 조직운영 자금 마련을 고민해야 하는 판국이다. 엄청난 돈을 챙겼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그러면 회원들의 생계는 어떻게 꾸리나

“아마 월드컵이 끝나면 회원들 중 개인 파산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웃음). 우리팀이 선전해 16강, 8강, 4강으로 올라갈수록 티켓 값이 너무 비싸서 전적으로 사비로 티켓을 산 회원들에게 월드컵 이후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축구협회 등 관련단체의 지원은 전혀 없고 또 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그저 축구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일 뿐이다.”

- 기업화 등의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붉은 악마의 앞으로의 진로는.

“일부 언론이 너무 앞서 가고 있다. 이 부분은 단정적으로 얘기할 부분이 아니고 철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까지 벌여놓은 일 정리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어떤 경우든 붉은 악마 조직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대의에는 변함이 없다. 기업화는 수익사업을 벌인다는 의미인데 이때도 투명성은 담보돼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또 ‘발전적 해체’는 우리가 초기부터 주장해온 진로다. 실제로 이번에도 붉은 악마는 16강 전까지만 응원 행사 준비를 했고, 이후 점차 발을 뺐다. 하지만 보라. 문제 없이 거리 응원이 열렸다.

우리는 기획자가 아니다. ‘내 돈 내고 내가 본다’는 입장은 다른 관중들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우리는 스스로 참여하는 응원을 독려하고 건전한 응원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계획이다.”

- 한국이 4강에 오르는 신화를 창조했다. 이번 결과를 예상했나

“개인적으로는 16강으로 만족한다. 4강 신화는 우리 모두가 일군 것이다. 유럽의 편파판정 시비는 기존의 사고틀이 깨어지면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일 뿐이다. 지면 반드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하지만 전체적인 틀에서는 이번 월드컵, 특히 우리나라가 했던 경기에서 판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 4강 신화 자체보다도 선수들, 또 우리 국민 모두가 최선을 다한 모습에서 더 큰 기쁨을 얻었다.”

- 한국축구의 미래와 과제는.

“내실을 기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지금의 결과에 만족하지 말고 2006년, 2010년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체육은 엘리트 교육에 묻혀 기반이 약한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축구가 생활화 되어 있는 유럽과 비교해도 ‘실력의 차이’보다는 ‘저변의 차이’다. 축구는 체육이 아니라 문화다. 특히 우리 프로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 마케팅 매니저를 찾는 일이다.

붉은 악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축구협회가 전적으로 우리를 믿고 맡겨준 때문이다. 협회와 붉은 악마가 서로 협력하면서 ‘윈윈 게임’을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일본보다 훨씬 발전된 응원 문화를 선보였다.”

- 마지막으로 가장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하필 축구인가.

“축구는 경기 내내 관중에게 딴 생각을 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인 경기다. 야구 같은 스포츠는 경기 도중 계속 흐름이 끊기기 마련이지만 축구는 일단 시작되면 흥분이 계속 증폭된다.

이게 축구의 매력이자 힘이다. 또 심리적인 측면이 강한데다, 아날로그적인 폭발력을 지니고 있어 응원의 힘이 빛을 발하는 종목이다.”

정리=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신인철씨는 누구

붉은 악마 회장 신인철씨의 이력은 다채롭다. 5형제 중 막내, 영화 ‘벤허’를 좋아했던 어릴 때 꿈은 영화감독, 단국대 치의대 87학번, 총학생회 문화부장, 현재는 부친이 운영하는 다이아몬드 수입 및 빌딩관리업체 현정흥산의 이사에다 MBA를 꿈꾸는 유학 준비생이다.

가끔 축구장을 찾는 평범한 팬이었다는 그는 1995년 하이텔 축구동호회원, 프로축구 삼성구단 서포터즈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축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축구는 마약입니다.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고 축구를 계속 보다 보니까 중독이 된거죠.”

그는 1997년 한ㆍ일전에 다녀온 것이 계기가 돼 이듬해 프로축구 서포터즈 50여명으로 발족한 붉은 악마의 초대 회장을 맡았고, 월드컵을 앞둔 올해 3월 회원들에 의해 제4대 회장으로 재추대됐다.

“처음 회장을 맡았을 때 ‘의사 시험도 때려 치우고 하는 일이 고작 축구 응원이냐’며 집안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심신이 다 지쳐 한 2년 축구장엔 얼씬도 안했습니다. 그러다 컨페더레이션컵 때 다시 축구장을 찾았는데 역시 재미있더라구요.”

왜 안정된 치과의의 길을 마다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루종일 도자기 빚듯 이빨을 만지고 다른 사람의 입안을 들여다보고 있는게 싫어서”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축구만큼 영화도 좋아한다는 신 회장은 “축구 관람은 보는 동안 몰입되고 동화되는 영화감상과 다르지 않다”며 “스탠리 큐브릭과 알란 파커 감독의 팬”이라고 했다

. 붉은 악마의 성공으로 영웅이 됐다고 추켜 세우자 그는 “에이, 변변한 여자 친구도 없는데”라며 손을 내저었다.

“내년에 경영, 마케팅 분야를 공부하러 유학갈 생각인데 5개월 동안 영어책 한 줄 읽지 못해 걱정입니다. 일이 정리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야죠.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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