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쯤의 일이다.친하게 지내던 검사가 상(喪)을 당해 문상을 갔다. 돌아가신 분에게 조의를 표하고 나서 다른 문상객들과 간단한 음식을 들고 있었다.
‘조직’에 대한 애정이 남달리 강한 탓인지 몰라도 늘 그렇듯이 그날도 상갓집에는 검사들이 문상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한참 각자의 얘기에 몰두하던 문상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검찰의 실세’라고 불리던 대검 간부 S씨가 나타난 것이다.
■ 자리의 중앙으로 모셔진 그가 먼발치에 선 나를 보고 크게 손짓을 하며 곁으로 불렀다.
자기 옆에 나를 앉히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그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 다른 계산이 있지않았나 생각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자리에 앉은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낯선 문상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당 국회의원, 국세청의 고위 간부, 그리고 사업한다는 사람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 말하는 태도나 내용으로 보아 이들의 방문 목적은 상주(喪主) 문상이 아니라 S씨에게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기자라는 것에 몹시 신경을 쓰는 것 같았고 ‘빨리 가주었으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거법 위반으로 2심에 계류중이던 국회의원이 먼저 용건을 꺼냈다.
“형님, 나 좀 살려주세요.” 국회의원의 뒤를 이어 이번에는 국세청 간부가 “형님, 잠깐만” 하면서 S씨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사업한다는 사람들은 그저 “많이 도와주세요”라고만 할뿐 차마 용건은 꺼내지 못했다.
■ 몇몇 검사의 처신문제가 또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당시의 ‘상갓집 풍경’이 떠올랐다.
상갓집까지 따라오는 것은 고사하고, 기자를 방패 삼아 옆에 두고 있는데도 넉살 좋게 ‘민원’을 꺼내는 그들이었다. ‘검사에게는 항상 청탁이 따라다닌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조그만 사건이었다.
‘일어탁수’(一魚濁水)라 하지만 검찰이 ‘제살 도려내기’에 나선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추상(秋霜)같은 검찰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신재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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