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그것의 상당 부분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공로였다는 것이 국민적 공감대다. 그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이 날로 커가면서 일부 네티즌들의 귀여운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히딩크를 귀화 시키자!”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못하게 출국 금지령을 내리자! ”등.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내가 히딩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두 질문에 대해 모두 떠나가야 하고, 또 떠날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차면 넘치고 넘치는 것은 헤퍼진다.
나를 언제나 조금은 비워 둘 수 있어야 한다. 그 다른 무엇이 와서 채워지기를 희망하며…. 그리고 내가 나를 더 채워지도록 노력 하기 위하여….
히딩크는 떠나야 한다. 그는 우리 민족에게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우리에게 스스로 누구인가를 되돌아보게 하고 자신감도 불어 넣어 주었으니 이제는 우리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떠나야 한다.
우리 민족은 영원히 타 민족의 가르침을 받으며 크는 어린 아이가 될 수 없기에 떠나야 한다. 그래야 성숙된 민족으로 세계 속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가 오기 전이나 온 후에도 선수들은 바뀐 것이 없다. 전에도 한국인이 뛰었고 지금도 외국 선수 한명 없이 똑 같은 한국인이 뛴 것이다. 그런데 바뀐 것은 무엇일까? 왜 다른 결과가, 그것도 엄청난 차이가 생긴 것일까?
히딩크가 한 일은 바로 자신이 닦은(굉장한 수고로) 깨끗한 거울에 한국인들의 자아가 어떤 모습이었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비춰 보여 준 것일 뿐이다. “아니, 우리가 이렇게 멋지다니!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일 줄이야.”
이솝 우화가 생각 난다. 병아리와 함께 부화되어 닭 모이를 먹으며 자랐던 독수리 새끼가 어느 날 높이 나는 멋진 새를 보고 엄마 닭에게 묻는다.
“저 멋지게 높이 나는 새는 누구야?” “독수리란다. 새 중의 왕이지. 자! 우리는 닭이니 하늘을 보지 말고 이리 와서 땅 위의 곡식이나 먹자.”
우리 민족이 우매한 엄마 닭(정치인)의 왜곡된 가르침으로 스스로 닭이 되어 가던 날, 옆집에서 온 지혜로운 닭이 귀띔을 해 준다.
“얘야, 너는 닭이 아니구나. 너는 독수리구나. 떠나라, 그리고 날아라.”
우리 민족은 반만년 역사 속에서 3,000번이 넘도록 외세로부터 침략과 간섭을 받아 왔다. 언제나 이리 채이고 저리 맞으면서 살아 왔다.
그러면서 ‘아Q정전’에 나오는 비열하고 저급한 ‘아Q’의 정신승리법(스스로를 업신여기고 스스로 경멸함으로써 얻는 자기 만족감)으로 자신을 위로해 왔다.
“동방 예의지국이라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그래서 우리는 본래 싸움을 싫어하고 투쟁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런 자위감이 민족패배주의가 되어 “그래, 우리는 닭이야!”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살아 온 것이다. 그래서 유럽 축구는 무섭고 위대하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유럽 축구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고기를 먹어서 체력이 세고 우리는 김치만 먹어서 후반전에는 힘을 못쓰게 된다고 스스로를 최면하면서 50여년을 월드컵에 참가해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자랑하는 것이, 유럽이 두려워 하는 것이 체력이라니….
우리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가 닭이 아니라 커가고 있는 독수리’임을 알았다. 투지와 집념, 승부욕에 피 끊는 독수리임을…. 대평원을 누비고 뛰어 다니던 지칠 줄 모르는 몽고인들의 기상과 웅지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히딩크씨, 그대는 떠나십시오. 존경과 감사의 눈물로 그대를 보내드립니다. 그대를 보내고 나서 우리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번 스스로 해 보겠소이다. 우리가 독수리임을 알았으니 날아가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일입니다. 지역주의, 패배주의, 자격지심, 비굴한 겸손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우리 스스로 대표팀을 맡아 4년 뒤 독일에서 만납시다. 그 때 당신은 성숙한 우리 민족의 모습과 우리 축구의 홀로서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김병수 신부·한국외방선교회 부총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