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세가 전개된 지난 27일 폭락의 주역은 기관이었다.은행 및 보험권이 1,130억원을 순매도했고, ‘730~760 바닥론’을 견지하며 매도 자제를 호소해 온 증권사 역시 281억원 어치를 팔았다.
이들은 반기 결산을 앞둬 손절매가 불가피했다고 해명했지만 은행과 보험은 연간 누적 순매도를 기록 중이고, 4월 이후 약세장에서 바닥론과 한ㆍ미 증시 차별화를 설파해온 증권사도 최근 석 달간 3,232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달 들어서도 기관의 순매도(7,440억원)는 외국인(3,368억원)을 압도, ‘지수 하락시 우량주를 저점매수해 충격을 흡수한다’는 기관의 역할론을 공허하게 했다.
머리와 입, 손발이 따로 움직이는 기관의 이 같은 이중성은 단기 실적위주의 평가시스템에 기인한다. 미국 투신사에 대한 평가기준이 3년 이상의 운용성과만을 측정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국내 평가는 매달, 매분기마다 이뤄지기 일쑤다.
심지어 가장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운용돼야 할 연기금 역시 수 개월 단위 투자수익 평가로 자금을 움직이고 있다.
증시 관계자는 “연기금 주식투자 한도가 확대되더라도 이 같은 평가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증시 유동성보강 이상의 의미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관은 주식시장의 핵심경쟁력인 자금력과 정보력, 전문성을 갖춘 증시의 강자다. 또 개미와 달리 뿌리가 증시인 만큼 하루 아침에 털고 일어 설 수도 없다.
그래서 기관에게는 개인과 달리 ‘수익 지상(至上)’의 투자논리 이상의 것, 즉 과도한 충격에 대한 완충역, 급등락에 대한 보완역이다. 최근 장은 ‘기관 기회주의’와 왜곡된 기관화의 폐해를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4월 이후 공모물량을 받아 차익을 남기고 외국인과 함께 현물을 지렛대로 선물에서 단기 수익을 챙긴 것 외에 기관이 한일이 뭐냐”는 한 투자자의 푸념이나 최근 일부 증권사가 선물ㆍ옵션 만기일 전후의 매물부담을 감춤으로써 부당이익을 본 혐의로 거래소의 조사를 받고있는 것은 기관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다.
최윤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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