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6월이 가고 있다. 월드컵이 피날레를 향해 치달으면서 우리 사회 곳곳이 덩달아 분주하다.우선 매스컴이 이번 월드컵의 대차대조표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사회학자, 미디어학자들을 동원해 ‘붉은악마 현상’, ‘히딩크 신드롬’, ‘W(월드컵)세대’ 등의 이면을 들춰보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월드컵이 우리 사회에 던진 묵직한 화두는 ‘세계화와 민족주의’라는 상충되는 두 가지 개념일 듯 하다.
이번 한 달 동안 우리는 태극기를 원 없이 흔들어 보았다. 경기장의 붉은악마들 위로 넘실거리며 펼쳐지는 거대한 태극기는 문자 그대로 감동의 물결이었다.
이탈리아전 때 대전 경기장을 빙 둘러 장식했던 다양한 디자인의 태극기는 신선한 충격마저 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에 아로새겨진 태극무늬, 팔등신 아가씨의 몸에 걸쳐진 태극기 탱크탑과 스커트….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태극기가 우리 생활 속에서 생선처럼 팔딱거리며 살아 움직인 하루하루였다.
그렇다면 월드컵이 우리에게 선물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일체감뿐이던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누구 못지않은 민족주의자가 되어 본 6월이었지만 히딩크 감독을 옆집 아저씨처럼 느끼는 정신적 세계화도 경험했다.
히딩크 감독을 딩크 오빠, 딩크 형이라고 부르는 우리 아이들. 네덜란드 그의 고향 한 카페에 걸린 ‘우리는 Guss(거스 히딩크)를 사랑한다’는 한글 플래카드는 유럽의 한 끝과 아시아의 한 끝을 단숨에 하나로 묶어 놓고 있다.
한국팀 감독은 네덜란드인, 일본팀 감독은 프랑스 사람, 잉글랜드 감독은 스웨덴 사람, 카메룬 감독은 독일사람….
심지어 세네갈팀 감독이 프랑스 사람인데 개막전부터 조국 프랑스를 꺾었다는 것 등은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국대 이탈리아전을 보던 엄마 : “야, 저 이태리 감독 정말 요란하네, 이태리 사람들이 다혈질이라더니 그 말이 맞나 봐.”
아이 : “저 감독도 이태리 사람이야?”
엄마 : “얘는, 이태리팀 감독이니까 당연히 이태리 사람이지.”
아이 : “뭐가 당연해? 우리나라팀 감독이 그럼 한국 사람이야? 엄마도 참.”
엄마 : 쩝…(할말없음)
그러고 보니 민족주의와 세계화가 꼭 상충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촌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태극기 물결 속에서도 점점 복잡하게 얽혀가는 지구촌의 세계화를 한치의 모순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그래, 월드컵의 복잡한 뒷계산일랑 어른들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세계를 향해 달려가렴.
우리들의 영웅이 된 히딩크 감독도 귀화하라는 한국인들의 애교섞인 생떼에 점잖게 한마디 하지 않더냐. 나는 네덜란드 여권을 가진 세계인일 뿐이라고….
/이덕규ㆍ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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