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동양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뒤 김득구는 샤워실에서 노래 부른다. ‘행복하다’며 챔피언은 운다.
맞아서 얻은 행복이기에,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밖에 없는 챔피언의 행복에는 눈물이 따른다.
1982년 링에서 맞아 죽은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이야기 ‘챔피언’. 감독 곽경택과 배우 유오성이라는 두 스타가 죽어서 전설이 된 권투 스타를 만났다.
감독은 처음부터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이야기는 결론부터 시작한다.
들릴 듯 말듯한 김현치 관장(윤승원)의 말을 뒤로 하고 도전자 김득구는 시저스 팰리스 호텔 특설링을 향해 나간다. 경기 시작. 맨시니와 주먹을 겨누며 화면은 정지한다.
“이 버스 어디까지 가는 거래요?” “어디까지 가는데.” “끝까징요.” 북한 말투와 비슷한 강원도 사투리의 소년. 잠든 가족들 사이를 빠져 나온 소년은 서울로 올라와 매혈소에서 피를 팔고, “시중에서는 100원인데 50원만 받고 파는” 만화 행상을 하다 거리에 나붙은 권투 경기 포스터를 보게 된다.
영화는 김득구가 전력을 쌓는 과정을 비교적 압축적으로 보여 주지만 이상봉(정두홍), 박종팔(김병서) 등 체육관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도 빼놓지 않는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는 얘기에 “들기름에 참깨를 섞어 먹으면 괜찮다”고 하니 “배고픈 데는 물이 최고다. 밥 달라 하면 쪽 팔리지만 물 달라는 건 괜찮거든”이라며 궁핍한 시대를 사는 지혜를 교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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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 풍로·두꺼비 소주…
이사 떡을 돌리며 얼굴을 알게 된 윗층 사무실 아가씨 경미(채민서)에게 “저는 동양 챔피언 김득구라 하는데요”라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려는 모습이나 여자의 눈에 띄려고 버스를 따라 뛰는 장면(이 대목에서는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가 나온다)은 웃음을 참기 힘들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약혼녀에게 “울지마, 내가 죽으러 가니”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콧등이 시큰하다.
성공 후 조금은 거만해진 영웅에 이르기까지 영웅을 구성하는 에피소드의 재미가 쏠쏠하다.
‘죽지 않으면 죽는다’ ‘사생결단’ 등의 격문을 붙인 김득구에게 “이런 건 다 마음 속으로 하는 거야”라며 의연한 모습을 강조하는 김현치 관장의 경상도 사투리는 챔피언을 만든 그의 품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권투 용어로 말하면 이 영화는 매우 정교한 잽을 자주 날리는 반면 상대방을 KO 시킬 결정타 한방이 약하다. ‘신파’의 함정을 피하려는 감독의 의도.
죽음의 14라운드가 시작되고 김득구가 쓰러지는 장면을 보여 주는 대신 카메라는 하늘로 올라간 후 다시 거진의 바닷가로 내려와 백사장에 누운 소년의 모습을 비춘다.
인공호흡기를 떼러, 아들을 죽이러 온 어머니가 한 말은 “득구야, 득구야, 안 듣기나” 뿐이다. 그러나 이 대목은 한번 울어보려 벼르는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대목.
그럼에도 지난해 ‘파이란’의 최민식 연기에 비견할 만한 유오성의 연기는 한마디로 징그럽다.
아버지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나는 개득구”라고 말하는 얼굴에는 자기모멸감이 스며있고, 챔피언이 된 후 고향의 환영회에서 환희에 찬 얼굴로 연설하는 얼굴엔 ‘촌놈의 의기양양’이 한 눈에 보인다. 몸을 만든 것 뿐 아니라 그는 성공한 촌놈, 김득구의 내면을 그리는 데도 성공했다.
스포츠 전기 영화라는 소재적 한계를 극복하고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 중 상당 부분은 유오성의 몫이 될 것 같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박은주기자
jupe@hk.co.kr
■심지 풍로·두꺼비 소주…소품에 담긴 70년대말
기진맥진해 자취방에 돌아온 유오성이 비사표 성냥으로 풍로 심지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라면 봉지를 뜯어 라면을 풍덩. 그러나 감독은 “N.G.” 라면 스프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것은 소품담당. 하나 밖에 없는 70년대 삼양 라면 봉지에 새 라면을 담고 부랴 부랴 특수풀을 붙여 다시 새 라면 하나를 만들었다.
영화 ‘챔피언’은 1976년부터 82년까지의 시대 박물관. ‘스프 포함’(스프 없는 라면도 있나?)이라는 문구가 선명한 삼양 라면, 뚜껑에 빨간 두꺼비가 그려진 진로 소주, 글씨체가 좀 더 굵은 당시의 박카스 병 등 소품 구성이 탄탄하다.
40년째 영화 소품을 담당해온 김태욱(62ㆍ서울종합촬영소 소품부)씨는 “우연히 삼양 라면 봉지를 갖고 있는 소장가를 만나 소주에 택시비 등 10만원쯤 들여 봉지를 빌려 왔다”고 말했다.
100장 인쇄하는데 200만원이 들 것을 예상했던 소품부로서는 ‘선방’한 셈.
진로 소주와 박카스는 둘 다 제조사에서 보관 중이던 것을 빌려 왔다. 푸른 빛이 도는 70년대 말 버스는 도장을 당시 색깔로 새로 한 뒤 컴퓨터로 출력한 당시 글씨체를 입혔다.
시외버스 정류장이나 매혈소에 모인 사람들의 궁색한 사람들의 다양한 패션 역시 큰 숙제. 여기에 바람머리 파마, 바가지 머리 등 다양한 헤어 스타일까지 연출하느라 품이 많이 들었다.
김득구의 신혼방을 꾸미는 것도 숙제. 소품부에 보관하던 흑백 TV, 80년대 초에 나온 컬러 TV는 모두 외형은 멀쩡하지만 TV가 나오지 않는 상태. 부품을 구해 나오게 만들었다.
당시 혼수품으로 유행하던 알미늄 옷장, ‘나쇼날’ 라디오는 소품실에 비치돼 있던 것.
“김득구 가방에서 쏟아지는 100원짜리 동전 100여개를 모두 70년에 나온 동전으로 구했다”는 김씨는 “감독이 ‘친구’ 때보다 더 완벽한 소품을 원하는 바람에 고생이 적잖았다”고 털어놓았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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