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중 시동이 꺼지는 아찔한 순간을 세 번 겪었다. 같은 경험을 한 친구가 전자제어장치(ECU)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알려줘 정비소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실은 문제가 많아 조사 중’이라고 했다. ECU 교체 후에는 그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았지만, 리콜도 이뤄지지 않았다.”“한 달에 3,000대 넘게 팔리는 인기 액화석유가스(LPG) 차종은 주행 중 연료가 거꾸로 흐르는 역화 현상이 다수 나타났지만 회사측은 운전자의 차 관리에 문제가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리콜을 건의받은 건교부도 미적대다 5개월 뒤 강제 리콜했다.”
자동차 관련 인터넷 사이트나,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되는 소비자 불만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2만여 개 부속으로 이뤄진 자동차에 각종 전자장치가 늘면서 검증하기가 힘든 ‘결함’들이 대폭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보호원에 주행중 시동이 꺼져 불만이 제기된 사례는 622건. 출고 6개월 이내인 신차가 63.4%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차종은 인기 승용차와 RV차가 주종이다. 메이커와 차종을 가릴 것 없이 소비자들의 불만이 제기됐지만 공개 리콜된 경우는 없었다.
올 상반기 건교부가 발표한 리콜조치는 5건에 6개 차종. 자동차 메이커가 결함을 신고한 렉스턴 카니발 볼보S80 카렌스 등 4건과 강제리콜한 옵티마 1건이다.
이처럼 리콜 건수가 적은 것은 외국과 달리 국내 업계의 소극적 자세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무쏘는 영국에서 리콜을 당한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고서야 뒤늦게 자체 리콜을 실시했다.
카렌스(LPG)는 주행 중 역화 현상의 책임을 놓고 수개월간 공방을 벌인 끝에 결국 리콜을 당했다. 트라제XG는 프랑스산 점화코일이 문제를 일으켜 리콜에 상당 기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차량의 근본적 결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대신 무상 수리를 해주는 비공개 리콜 방법을 즐겨 쓰고 있다.
메이커들이 건교부에 정식 신고를 하지않고 소비자보호원의 요구를 받아 자체적으로 비공개 리콜한 건수는 올해 3건. 2001년에는 24개 차종에 19건, 2000년에는 7개 차종에 6건으로, 최근 3년간 85만대를 넘는다.
두 차례 자체 리콜한 차종만 해도 싼타페(디젤) 세피아 무쏘 코란도 티뷰론 레토나 비스토 아토스 옵티마 등이다. 작은 수리까지 포함해 업체들이 비공개 리콜하는 경우는 연 3,000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업체들이 리콜을 꺼리는 이유는 자동차 판매와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첨단제품화하면서 고장 원인 규명이 어려운 점은 업체들이 ‘결함’ 인정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소비자보호원 김종훈 팀장은 “업체들의 과도한 신제품 경쟁에 따른 출고전 품질관리 미비, 독과점 시장체제 등도 자동차 시장을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변질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리콜 시행조건의 완화, 리콜 전담기구 신설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리콜 대상은 자동차에 한정되어 있지만,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에서는 자동차는 물론 타이어 휠 에어백 장식품 등 부속장비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김 팀장은 “소비자들이 리콜 차량에 거부 반응이 크더라도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솔직하고 떳떳한 자세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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