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 후반기를 이끌 의장을 자유투표제로 뽑는다고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희한한 방식이다.명색이 의원 262명 모두가 헌법에 보장된 입법 기관인데 정작 누가 의장이 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장을 뽑는다.
후보신청을 받는 절차가 없으니 후보자들로부터 국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정견발표를 듣는 의례적인 과정도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회 원 구성을 한 달 이상 미뤄오다 최근에야 이같이 합의한 의장선출 방식을 민주적 투표방식으로 평가 받는 ‘자유투표(크로스 보팅)’ 인양 호도하고 있다.
이들은 의장감을 정해놓고 투표는 요식절차로 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후보를 정하지 않아 262명 중 누구나 의장이 될 수 있으니 사실상 자유투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각 당은 명시적으로 밝히지만 않았을 뿐 후보를 사실상 내정한 것은 과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자유투표제의 본래 의미는 이와는 다르다. 지난 2월 국회법 개정으로 명문화된 자유투표제란 ‘의원이 소속 정당의 의사에 얽매이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하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당리당략에 따라 의원을 거수기로 만드는 정당정치의 일방통행을 견제하기 위해 진통 끝에 도입됐다.
이 같은 취지의 제도가 정견발표는 커녕 후보도 없이 국회의장을 뽑는 이상한 선거를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왜곡돼선 곤란하다.
의정경험이 가장 많은 비입각 의원에게 하원의장을 맡기는 영국이나 다수당에 전권을 주는 미국식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자유투표라면 출마자들을 상대로 당당히 정견도 듣고 당론에 관계없이 뽑는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권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은 이번 의장투표 역시 각 당 지도부의 의중을 반영하는 의례적인 절차에 불과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론상으로는 다수당인 한나라당에서 내정하지 않은 제3의 인물이 의장이 될 수 있지만 실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정치권의 제대로 된 관행이 필요한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동국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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