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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조기, 일장기,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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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조기, 일장기, 태극기

입력
2002.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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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ㆍ11 테러가 발생한 후 미국에서는 성조기가 물결쳤다.국민들은 자동차에 성조기를 매달고 다녔고 집에도 내걸었으며 성조기 패션도 유행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의 표상 아래 한 마음으로 뭉치고 위기를 극복하자는 다짐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태극기의 물결이다. 3ㆍ1 운동 이래 가장 많은 태극기와 가장 큰 태극기가 거리와 경기장에 등장했다. 우리나라가 아무런 위기 상황에 빠지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우리보다는 열기가 훨씬 못하지만 일본도 그렇다고 한다. 일장기는 그것이 풍기는 군국주의적 냄새로 인해 일반 국민들 사이에 국가인 기미가요와 함께 아직까지도 거부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기간 중 일본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경기장과 거리에서 일장기를 흔들었고 서포터들은 경기 시작 전 기미가요를 따라 불렀다고 한다.

월드컵은 전쟁의 역사를 모르는 일본 세대에게 일장기는 그냥 국기일 뿐이라는 자연스런 인식을 준 셈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함성에 화답하는 이 거대하고 도도한 태극기의 물결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국기가 그렇게 멋진 패션 소재나 소품이 될 수 있는지 이제야 알았다. 스카프로, 두건으로, 치마로, 또 스티커로, 페이스페인팅으로 태극기는 둘러지고 씌워지고 그려졌다.

남녀노소나 지역, 계층을 가릴 것 없이. 우리가 태극기를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던 국민이었을까. 여전히 경축일에 태극기를 거는 집은 그리 많지 않다.

국가의 표상인 국기는 우리에게 친근하게만은 다가오지 않았다. 관청에 펄럭이는 태극기에서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곤 했다.

전제적이고 억압적이며 권위적이고 동원적인, 무엇보다 관(官)의 냄새가 풍기는 국기였다. 때로는 그 반대로 민초들이 마지막으로 쳐든 소리없는 아우성, 저항의 깃발이기도 했다.

그 태극기가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다양한 크기로, 무늬로, 장식 소품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이제 누구도 태극기를 어색해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탱크탑으로 싸매도, 담벼락에 그라피티(낙서 같은 벽화)처럼 그려도 누구도 국기를 욕보였다고 탓하지 않을 만큼 우린 갑자기 태극기와 정서적으로 가까워진 것이다.

분명한 의식과 감성의 변화다. 2002년 여름 우리는 국기로 상징되는 국가와 그 구성원인 개인 간의 관계를 새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누가 시킨 이데올로기 교육도 아니다. 우리는 손목이 뻐근하도록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것은 한이 서렸던 가슴에서 우러난 화합과 관용, 포용의 손짓이다. 역사적 콤플렉스의 해소이며,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늦은 뒤풀이며, 그리고 이제 당당하게 세계 일류로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준 공동체적 몸짓이다.

권력에 눈치보며 억눌려 지내왔던 중장년층이, IMF 시절 허리끈을 졸라맸던 아줌마들이 대거 거리에 나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무르익은 시대적 정서에 젊은이들의 당당하고 발랄한 자기 표현의 개인적 감성이 만나 미증유의 거대한 공동 체험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 중심에 태극기와 “대~한민국”이 있다.

월드컵이 우리에게 준 예기치 못한 선물. 그것은 바로 태극기의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 체화가 아닐까.

/한기봉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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