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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반칠환의 詩 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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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반칠환의 詩 세편

입력
2002.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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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세상’ 여름호에 반칠환씨의 시 세 편이 실려 있다. 모두 모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모기가 글감으로 등장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李奎報ㆍ1168~1241)에게까지 올라가는 일이니 별스럽다고 할 것은 없겠다.다만 한 잡지로부터 청탁 받은 작품 세 편을 죄다 모기에게 바친 것을 보니 시인이 요즘 모기에 꽤 시달리나 보다. 그러나 시적 화자가 모기에 대해 미움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첫번째 시는 ‘문 열사(蚊烈士)’다. 모기가 어떻게 열사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나?

“크게 신문에 날 일은 아니로되/ 산천초목도 벌벌 떨던 독재자로 하여금/ 제 뺨을 세 번 되우 치게 하고 죽었으니/ 아는 사람들은 그 의로운 血(혈)을 기려/ 蚊烈士라 부른다// wing-wing-/ 그는 작지만 좌, 우의 날개를 지녔다고 전한다.”

빙긋 웃음을 자아내는 가벼운 시다. 열사라는 말을 희화화했다고 나무라는 엄숙한 독자는 없으리라. 넷째 행에서 모기의 피를 ‘피’라고 하지 않고 ‘血’이라고 한 것도 시인의 재치다.

독재자로 하여금 제 뺨을 세 번이나 후려치게 한 모기의 피는 의혈(義血)이다.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을 ‘공포’에 젖게 하는 모기의 날갯짓 소리를 “wing-wing-”으로 표현한 것도 기발하다.

두번째 시는 ‘여일(如日)’이다. 여일은 국어 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말이지만, 본문을 읽어보면 ‘다른 날과 똑 같은 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려, 이 두메산골엔 그 날이 그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네’// 찰싹!/ 산 모기 한 마리를 정강이에 문대며 그이가 말했다// 달맞이꽃도 어제처럼, 마당가에 화안하다.”

이 시는 첫번째 시처럼 웃음만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독자들은 한 순간 자신을 모기에게 투사해보게 된다.

내가 죽은 뒤에도 달맞이꽃은 어제처럼 마당가에 환할 것이다. 친구들과 가족들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일을 하며 내가 죽기 전과 똑 같은 삶을 누릴 것이다.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죽은 이후의 나날도 내가 죽기 전의 나날과 여일(如一)한 여일(如日)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독자를 잠시 쓸쓸하게 만든다.

마지막 시 ‘밤을 치며’는 세 행이다.

“쯔쯧, 修身(수신) 齊家(제가)라 했거늘 요 밤벌거지는/ 아늑한 제 집을 똥으로 채우고야/ 하늘로 날아오른단다.”

이 시는 다소 불명료하다. 표제 ‘밤을 치며’는 밤에 모기를 잡기 위해 벽을 친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아늑한 제 집을 똥으로 채우고야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맞아) 벽을 피로 더럽히고야 승천(昇天)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의 생태에 대한 언급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혹시 시인은 그 두 해석을 모두 노렸던 것일까?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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