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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暇 어디로] (1)원시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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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暇 어디로] (1)원시의 계곡

입력
2002.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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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에 후끈 달아오른 이 땅은 이제 장마비에 식을 것이다.장마가 끝나면 바로 휴가철. 준비하기에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휴가 준비에 참고가 될만한 특집을 두 차례 마련한다.

첫 화두는 계곡이다. 그냥 물이 흐르는 단순한 계곡이 아니다.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그래서 원시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강원도 산골의 오지 계곡이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휴가객의 50% 이상이 강원도 땅을 찾을 전망. 그러나 인파에 밀려 더욱 땀나는 휴가가 될 수도 있다.

용기를 갖고 오지를 찾는 것은 어떨까. 때묻지 않은 푸르름과 티끌 하나 떠있지 않은 맑은 물, 그리고 청아한 새소리. 더위와 함께 속세의 상념까지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아침가리계곡(인제군)

인제군 기린면의 방동, 진동땅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원시림이 살아있는 곳이다. 정감록에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힌 3둔 5가리가 이 곳에 있다.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여길 정도로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포악한 세상을 등진 자들이 이 곳에서 살았다. 임진왜란도 6ㆍ25 전쟁도 몰랐다.

아침가리는 5가리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 꼽힌다. 군내버스의 종점이기도 한 기린면 진동리 마을회관 앞이 입구이다. 갈터라고 불린다.

앞에 넓고 깊은 물이 있어 입구가 없는 것 같다. 조금 올라가 얕게 흐르는 물을 건너면 출발지이다.

아침가리계곡에 드는 것은 이렇듯 길을 찾은 작업이다. 분명 사람이 드나드는 곳인데 발길에 다져진 길이 없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만이 길을 냈다. 별 수 없이 물길 양쪽의 돌무더기를 따라 오른다.

계곡 이쪽이 험해지면 저쪽으로, 다시 저쪽이 어려우면 이쪽으로. 수없이 계곡물을 건넌다.

계곡은 방동초등학교 조경동분교(폐교)에서 일단락된다. 직선거리 3m. 그러나 구절양장으로 굽어져 있어 실제 거리는 8㎞가 넘는다. 계곡 곳곳에 물놀이를 즐길만한 소와 탕이 늘어서 있다.

물은 맑냐고? 바보 같은 질문이다. 물 속에 들어가 마구 마셔도 될 정도이다. 상류인 폐교 부근에 청소년 수련시설이 지어지고 있다. 현재의 아침가리를 볼 수 있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듯하다.

▼덕풍계곡(삼척시)

응봉산은 삼척시의 뒷산이다. 높이는 해발 998m로 백두대간의 산 중 그리 높지는 않지만 험준한 산세와 깊은 계곡을 가지고 있다.

풍곡면 가곡리에서 응봉산에 오르는 계곡이다. 계곡의 중간에 외딴 촌락인 덕풍마을이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계곡을 따라 난 오솔길을 2시간이 넘도록 걷고 기어야 했다.

마을에서 필요한 물품은 모두 머리에 이거나 지게로 날랐다. 비나 눈이 심하게 내리면 그냥 고립되었던 곳이다.

이 마을이 알려지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계곡입구인 풍곡초등학교에서 덕풍마을에 이르는 8㎞ 계곡길이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을 만큼 넓어졌고, 물을 건너는 곳에는 다리가 놓였다.

덕풍계곡은 물놀이는 물론 가족트레킹, 그리고 본격적인 산행을 겸할 수 있는 곳이다. 덕풍마을에 이르는 8㎞ 계곡길은 평지에 가깝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아름답다. 울창한 숲이 터널을 이루고 그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 얕은 곳이 많아 아이들도 걱정없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계곡의 아름다움은 덕풍마을 위로 가면서 더해진다. 제1용소에 이르는 2㎞ 구간이다. 길이 좁아지면서 계곡 양쪽으로 바위 절벽이 나타난다.

물을 지척에 두고 길이 따라간다. 물이 퍼렇다 못해 간장같이 시커먼 제1용소 위로는 본격적인 산행코스이다. 그러나 초보산꾼들이 감행할 수 있는 코스는 아니다.

계속 이어진 가파른 바윗길과 길 아닌 길이 이어진다.

▼법수치계곡(양양군)

양양 남대천은 한반도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몇 안 되는 강 중 하나이다. 오대산 자락의 하나인 응복산(1,359m)에서 발원한다.

봄에는 은어, 가을에는 연어가 올라오는 위대한 모천이다. 법수치계곡은 남대천의 최상류이다. 하류 남대천이 느긋하게 흐른다면 법수치계곡의 물은 즐겁게 흐른다. 맑고 아름답다는 의미이다.

법수치계곡 여행은 인상적인 드라이브에서 시작된다. 양양 남대천 옛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면 법수치로 들어가는 길. 4년 전 포장을 해서 길이 좋다.

길은 8개의 다리를 건너며 남대천을 계속 따라 간다. 수리, 도리, 장리 등 예쁜 이름만큼이나 평화로운 마을이 이어진다. 약 22㎞를 가면 남대천 중상류 마을인 어성전리에 닿는다.

어성전은 ‘물고기가 밭을 이루고 성을 쌓는다’는 의미. 물고기가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어성전도 한 때에는 오지로 꼽혔으나 포장도로가 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오지가 아니다. 사시사철 여행객이 찾아든다.

법수치는 어성전에서 포장과 비포장이 뒤섞인 길을 약 10㎞ 더 가야 한다. 이 길은 나무를 관리하는 임도이기도 하다.

임도는 계속 산을 올라 건너편의 미천골까지 이어지지만 일반 차량은 법수치마을 끝까지 밖에 갈 수 없다.

쇠나드리, 개잔이물내치기, 굴아우 등 동네 곳곳을 일컫는 정겨운 이름에서 촌구석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외나무 다리로 이웃과 건너고 저녁이면 밥짓는 연기가 피어 오르던 오지 법수치마을은 지금은 외견상 많이 변했다.

오지의 삶을 추구해 이 곳에 둥지를 튼 한 도시인의 통나무집이 시작이 돼, 많은 농가가 집을 산뜻하게 바꾸었다. 부티나는 오지마을이다.

▼명개계곡(홍천군)

오대산은 등산로가 다양한 산이다. 평창군의 월정사, 강릉시의 소금강 코스가 가장 잘 알려진 곳. 사람들이 가장 덜 찾는 코스를 꼽으라면 홍천군 내면에서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은 오대산을 넘어 월정사로 이어진다. 명개계곡은 이 코스 곁에 있다.

큰 길(56번 국도)에서 가깝기 때문에 오지로 여기는 것 자체가 조금 무리일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오지의 그것을 닮았다.

계곡은 오대산 홍천매표소에서 시작된다. 약 4㎞. 계곡을 따라 걸으면 왕복 2시간 정도의 적당한 트레킹이 된다.

천연기념물 제74호인 열목어가 서식한다. 물이 맑으면서도 차갑다는 의미이다.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고 있으면 5분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물이 차다.

명개계곡은 터를 잡고 바캉스를 즐기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56번 국도를 지난다면 들러봄직한 곳이다.

홍천에서 양양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구룡령 고개가 시작되기 직전에 오른쪽으로 ‘오대산’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명개계곡 인근에는 명물이 많다. 그 으뜸이 삼봉약수이다. 세 구멍에서 솟아오른다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각기 다른 맛의 약수가 솟는 ‘실론약수’이다. 불소의 함유량이 많아 풍치나 빈혈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꿀꺽 마시는 게 아니라 입에 머금은 후 입안을 헹구고 씹듯이 마셔야 효과가 좋다고 한다.

▼가리왕산계곡(정선군)

가리왕산계곡은 원래 오지가 아니었다. 탄광이 있었다. 한때 ‘검은 산골’이라 불릴 정도로 탄광이 많았던 정선군은 석탄산업이 빛을 잃으면서 걸으면서 팔자가 바뀐 곳이다.

가리왕산계곡도 예외는 아니다. 무척이나 흥청대던 탄광촌이었다. 그러나 폐광과 함께 갑자기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자연의 정화능력은 뛰어나다. 먹물 같았던 계곡물은 옥수로 변했고,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빛을 잃었던 나무는 건강한 생명력을 되찾았다.

사람들이 떠나 오지가 된 가리왕산계곡은 그렇게 다시 살아난 자연으로 반짝인다.

평창에서 정선으로 향하는 42번 국도에 입구가 있다. 정선의 조양강이 영월의 동강으로 이름을 바꾸는 곳이다.

입구의 이름은 가리왕산계곡이 아니라 ‘가리왕산자연휴양림’이다. 입구에서 한참 들어간다. 과거 석탄을 날랐던 길이기 때문에 번듯하다.

계곡 입구에 폐광의 흔적이 남아있다. 버려진 탄광의 철골 구조물에서 흐르는 붉은 녹물이 콘크리트구조물을 물들였다. 그러나 폐광만 지나치면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다.

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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