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시험을 봤는지 모르겠습니다.”온 국민이 붉은 축제를 벌인 25일, 고려대와 한양대에서 사법고시 2차 시험(25~28일)을 치른 5,700여 명의 수험생 사이에서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답안을 작성하는 데 ‘대~한민국’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아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이번을 마지막 시험으로 여기고 준비해왔다는 김모(35ㆍK대 졸)씨는 “그동안 월드컵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래야 집중할 수 없었다”며 “만약 낙방하면 시험일정을 조정하지 않은 국가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엄지호(34ㆍ성균관대 졸)씨는 “공부를 하면서도 틈틈이 한국 경기를 봤지만 축구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며 “월드컵과 시험이 같은 달에 있는 게 너무 원망스럽다”고 고개를 저었다.
올 해 1차 시험에 합격, 내년에 한 차례 더 시험을 볼 수 있는 고시생들은 아예 시험을 포기하고 월드컵에 열중한 경우도 적지 않다.
내년에 승부를 걸 요량으로 매번 길거리 응원에 나갔다는 최모(30)씨는 “고사장 분위기가 예년과 달리 어수선하고 침울했다”며 “2차 시험을 치르는 가운데서도 독일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시촌 마다 사시 2차 평균점수가 5점 가량 떨어지고,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보다 여자 합격률이 높을 것이라는 등 갖가지 풍문이 나돌고 있다. 고시학원인 태학관 법정연구회의 김영섭(金榮燮ㆍ36) 기획부장은 “사시 수험생들의 공부자세가 흐트러진 것은 처음 본다”며 “2차 합격 가능성은 월드컵에 대한 관심에 반비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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