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밤 월드컵 준결승전 한국-독일전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길게 울리는 순간 전국에서는 일시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많은 이들이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떨궜고, 또 많은 이들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그러나 아쉬움의 순간은 지극히 짧았다. 사람들은 곧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앞서 연이은 승리 때와 똑같이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구호와 노래가 노도처럼 거리를 휩쓸었다. 그리고는 모두들 서로 서로를 껴안으며 위로와 격려를 나누었다.
“정말 잘했다.” “우리가 이뤄낸 것은 이미 장엄한 역사가 됐다.” “우리는 우승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월드컵 개막 이래 마치 ‘폭주 기관차’와 같던 한국의 질주가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끝내 멈춰섰지만 시민들은 모두 당당한 승리자의 표정이었다.
■연일 사상 최대 인파 기록 경신
건국 이래, 아니 단군 이래 최대라고 할 만한 700만 인파가 이날 전국 방방곡곡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응원단의 성지(聖地)가 된 서울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에는 동틀 무렵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 경기시작 4~5시간을 앞두고는 이미 빈틈없이 메워졌다.
상당수 기업과 학교들이 이날 단축근무, 단축수업을 하거나 아예 임시 휴무, 휴업하면서 길거리 응원분위기를 후끈 달궜다.
회사원 양성철(梁性喆ㆍ42)씨는 “52년전 오늘이 비극적인 동족상잔이 시작된 날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월드컵을 유치해내고 세계 4강에 우뚝 선 우리의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며 “오늘 4,700만 모두가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절정에 이른 붉은 열정
거대하고도 역동적인 붉은 응원은 이날 절정을 이뤘고, 패배의 순간에도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붉은 악마를 축으로 한 국민의 하나된 성원, 세계도 놀란 질서와 시민의식. 그동안의 월드컵 대장정이 우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데 사람들은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회사원 윤기훈(尹基勳ㆍ33)씨는 “정말 아쉽지만 전 국민이 환호하고 기뻐하는 감격의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이날도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주워담았다. 대학생 서진수(徐鎭洙ㆍ21)씨는 “오늘의 승패에 관계없이 세계인들은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위대한 나라로 기억할 것”이라고 자부심을 내보였다.
■국적을 불문한 세계인의 축제
이날 경기는 한국에 모인 전 세계인들의 축제였다. 사업차 서울에 와 친구들과 함께 상암경기장에 나온 미국인 스티브 페나치나(50)씨는 “뉴스를 보며 동경해 왔던 한국의 역사적인 축제에 동참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만은 ‘적국민’이 된 독일인들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휴가를 얻어 왔다는 뒤르크 엥겔브레히트(32)씨는 “이런 응원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며 “친절하고 열정적인 국민성으로 인해 한국축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덕담을 했고, 뮌헨 출신이라는 앤디 브루에크(30)씨도 “월드컵을 이처럼 즐거운 축제로 승화시킨 나라는 없었다”며 연신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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