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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축구와 경제의 상관관계

입력
200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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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표팀은 최강이 아니다. 최근 경제난에 힘들어 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이곳에서는 강대국으로 행세할 수 있다. 내가 이상향이라고 비유한 것은 국제사회에서는 절대 일어나기 힘든 부국과 빈국의 자리바꿈이 월드컵에서는 현실로 이뤄진다는 의미다.”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1일 열렸던 세계 석학 원탁회의에서 빈민구제 국제기구인 ‘폴래닛 파이낸스’의 자크 아탈리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0년대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는 “5월31일 서울 상암동 경기장에서 열린 프랑스와 세네갈 전 결과는 의미가 깊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자리를 바꿀 수 있다는 하나의 이상향을 보여줬다. 사실 프랑스 대표팀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선수의 연봉은 세네갈 선수 전체 연봉을 합한 것보다 많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은 절반은 사실로, 절반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미국은 축구에서도 세계 최강의 자리에 근접하고 있는 반면 아르헨티나는 예선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이상향’은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것으로 보아 이번 월드컵의 최대 이변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미국이다.

미국은 축구를 ‘여성들이 하는 게임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나라다. 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에 가려 발 붙일 틈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월드컵에서의 자국 팀 경기 자체를 잘 모르고 있을 정도다. 그런 나라가 세계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대회 초반 냉담했던 미국 언론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멕시코와의 대전에서 이기던 날 “미국의 승리는 32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에 비해 미국 축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썼다. 자신들이 봐도 대견한 모양이다.

왜 미국 축구가 이렇게 발전을 했을까.

축구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교육과 선진축구 접목, 96년 출범해 정착단계에 접어든 메이저리그 축구(MSL), 유망선수 수급 시스템의 확보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풀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역시 돈이다. 막대한 투자다.

축구가 아무리 비인기 종목이라고는 하지만 월드컵에 대비해 또는 세계적인 축구 열기에 동참하기 위해 쏟아 부을 엄청난 자금이 미국에는 있었고, 그것을 실행한 결과가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미국팀의 모습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16강전에 오른 일본 축구는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투자의 결실이다. 일본은 수년간의 준비 끝에 93년 J-리그를 출범시켰다.

그러면서 탈 아시아를 선언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J-리그 출발을 ‘축구판 메이지 유신’이라고 부른다. 그 이후 일본 축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반면 지난 대회 우승팀이자 FIFA 랭킹 1위인 프랑스는 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한 마디로 꾸준한 자기 혁신, 구조조정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프랑스 르몽드는 사설에서 “프랑스 축구의 거품을 제거하는데 이번 패배는 기여했다. 프랑스팀 패배는 금전의 추구는 결국 파산이고, 교만은 동기유발의 가장 큰 적이며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과거 브랜드 명성만을 과신한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중국의 패배는 개방과 해외 경험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세네갈의 선전도 마찬가지다.

축구는 갈수록 투자에 비례하는 자본주의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FIFA 랭킹을 따로 매길 필요가 없어질 날도 멀지 않을지 모르겠다.

경제력 순서로 세우면 되니까. 축구도 경제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니 만큼 그 원리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번 월드컵은 재차 보여주고 있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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