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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 한나라당의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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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 한나라당의 오만

입력
200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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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나라당이 원로 언론인 정경희씨의 칼럼이 한나라당과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건은 한나라당의 오만이 위험 수위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만든다.한나라당은 그런 오만을 범하기 이전에 그간 민주당과 벌여 온 이전투구(泥田鬪狗)식 언쟁을 상기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두 보수 정당은 상대편에 대한 의혹 제기를 빙자하여 무책임한 언어 폭력을 남발해 왔다. 둘 다 언론 보도를 염두에 둔 고도의 ‘언론 플레이’였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 덕분에 한국 언론의 정치 보도가 얼마나 지저분해졌던가? 또 그로 인해 악화된 국민의 정치 혐오와 불신은 어떠했던가?

두 정당의 이전투구는 어린 아이들이 자기가 다 먹겠다고 과자에 미리 침을 묻혀 놓는 장난을 방불케 했다.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매도와 저주의 대상이 되어야만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들이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게 될 것이고 그래야 기존 정치인들의 기득권이 보장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는 말이다.

나는 한국 정치판의 그런 비극에 대해 두 보수 정당만을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두 정당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과거 불행한 역사의 업보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론 달라져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런 자기 성찰의 자세를 갖고 정씨의 칼럼을 다시 읽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언론의 직무유기를 비판한 정씨의 칼럼은 궁극적으로 ‘정치를 위한 변명’이었다.

언론이 정당간 이전투구의 나팔수 노릇만 하지 말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언론이 전달하기에만 바빴던 문제 제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였다.

그 점을 무시하고 소송을 제기한 한나라당의 오만은 문자 그대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한 파트너로 참여해 벌인 이전투구의 결과를 중계하기에만 바빴던 언론에게 최소한의 언론 윤리를 묻고자 했던 원로 언론인의 충정을 이런 식으로 모독해도 되는 것인가?

혹 한나라당은 6ㆍ13 지방선거의 대승으로 인해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닌가? 민주당과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가혹한 심판으로부터 도대체 무얼 배웠는가? 민심은 오만을 응징하고야 만다.

우리 국민은 지금 시소 게임을 하자는 게 아니다. 선거를 통해 한 정당의 오만을 응징했더니 다른 경쟁 정당이 오만해지고, 그래서 또 그 정당을 응징하면 또 다른 정당이 오만해지는, 이런 식의 ‘오만의 악순환’에 질려 있다.

이젠 오만이 아닌, 겸손 경쟁을 해보자. 한 정당이 겸손해서 표를 줬더니, 다른 정당이 더 겸손해지는, 그런 경쟁을 해보자는 말이다. 이번 소송 건에 대해 한나라당의 반성을 촉구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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