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개척시대 초원을 질주하는 야생마에게 드림웍스는 ‘스피릿(Spirit)’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그리고 스피릿을 자유를 향한 갈망, 사랑과 우정이라는 지극히 보편적이면서도 거대한 가치를 지켜내는 영웅으로 만들었다.
‘백설 공주’류의 고정관념을 비틀어대던 전작 ‘슈렉’의 삐딱함을 말끔히 털어내려는듯 말이다.
드림웍스의 장편 애니메이션 ‘스피릿’(원제 Spirit: Stallion Of The Cimarron)은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한 야생마의 모험담이다.
“말은 아름답고 고상하며 사랑스러운 생명체”라는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의 초안이 4년간의 작업을 거쳐 모습을 드러냈다.
말(馬)이 말(言)을 하면 대개 코미디가 되고 마는 숱한 전례를 목격한 카젠버그 등 제작진은 스피릿을 진지한 영웅서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과묵한 말’로 만드는 전략을 썼다.
스피릿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맷 데이먼의 차분한 내레이션과 한스 짐머의 음악,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의 록가수 브라이언 아담스의 노래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했다.
용감하고 책임감 강한 스피릿의 모험은 두 발 달린 낯선 동물, 즉 인간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호기심으로 백인 기병대 캠프를 엿보다가 기병대장의 포로가 되고 만다.
자신을 길들이려는 기병대장의 시도에 ‘유 캔트 테이크 미(You Can’t Take Me)’ ‘겟 오프 마이 백(Get Off My Back)’이라며 저항하는 스피릿. 자신처럼 포로로 잡혀온 인디언 라코타족 청년 리틀 크릭과 의기투합해 탈출에 성공하지만, 리틀 크릭의 애마 레인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고향으로 곧장 향하지는 못한다.
더욱 지독한 시련이 영웅 탄생을 위해 기다린다. 인디언 마을을 급습한 기병대에 레인은 목숨을 잃을 지경에 놓이고 스피릿은 다시 붙잡혀 철도건설 현장으로 끌려간다.
하지만 스피릿은 분연히 일어선다. “내 고향으로 가는 철로를 막아야 한다”면서.
채찍도 사슬도 화염도 스피릿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꺾지 못하고, 추격하는 기병대장의 총구도, 더 이상 갈 곳 없는 막다른 절벽도 고향의 자연으로 달려가려는 스피릿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한다.
자유 사랑 우정 자연에 대한 옹호의 메시지를 전하는 ‘스피릿’은 보수적으로 비쳐진다.
서부 개척시대에 대한 미국인의 향수, 원주민에 대한 부채 의식을 한꺼번에 달래주려 한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지키고 싶은 가치를 끌어모은 이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을 미워하기는 힘들 것 같다.
스피릿을 올라타고 싶은 열망이 숨어있는 인디언 리틀 크릭, 스피릿의 자유를 강탈하려다가 결국 감화되는 기병대장은 둘 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닌 관계.
보수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는 영리한 선택이다.
‘스피릿’의 야심찬 시도는 영상에 있다. 고집이 묻어나는 스피릿의 얼굴과 행동, 요염한 레인과 장난기 어린 망아지의 표정에는 감정이 살아있어 캐릭터를 생동감있게 만든다.
광활한 자연이 스펙터클하고, 액션은 박진감 넘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통 애니메이션의 손놀림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성과인 3D의 성공적인 결합 때문.
드림웍스는 2D와 3D의 경계선을 거의 눈치채기 힘든 이 작품에 ‘트래디지털(tradigital)’이라는 새로운 장르명을 붙였다. 7월 5일 개봉. 전체 관람가.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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