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년의 남자가 외로이 수면을 헤엄치고 있다. 사위는 캄캄하다.수면 위로 드러난 여윈 상반신, 물기 어린 눈동자와 벌어진 입으로 보아서는 남자의 기력은 얼마 남지 않은듯하다. 그러나 그는 양팔을 힘차게 뻗어 심연을 헤집고 나아가려 한다.
조각가 이종빈(46)씨가 7월 3일까지 서울 소격동 금산갤러리(02-735-6317)에서 열리는 초대전에 출품한 2002년 작 ‘수영하는 사람-Ⅰ’이다.
두꺼운 철판의 매끈한 표면을 짙은 코발트의 모노크롬으로 처리하고, 폴리에스터로 만든 신체는 구릿빛으로 채색해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수영하는 남자의 얼굴은 작가 자신의 얼굴과도 닮았다.
또 다른 작품 ‘자소상’은 머리가 상대적으로 크고 양팔을 겨드랑이에 딱 붙인 형태의 작가 자신의 누드를 와이어로 공중에 매달아 놓은 것이다.
평론가 최태만씨는 “철판의 수면은 망망대해와도 같은 예술, 혹은 견고한 예술의 제도를 은유한 것이다.
자기 존재가 분명하게 부각되는 이 작품들은 낭만주의적 절대 고독의 상태가 아니라 자기 확신을 드러낸다.
예술의 바다를 홀로 헤엄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작가의 나르시시즘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간 다양한 인체의 형상을 통해 인간을 심리적ㆍ사회적 풍경으로 표현해온 이씨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렇게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20여년 간 작업한 자신의 대표작 100여 점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시장 바닥과 벽면을 이용해 계통나무처럼 설치한 작품 ‘아트 맵’도 예술적 뿌리를 더듬어본다는 작가의 의도를 나타낸다.
월남한 실향민으로 작고한 아버지의 얼굴을 2㎙ 크기로 확대 제작, 그 눈을 통해 이산의 아픔을 담은 VTR영상을 보여주는 영상설치작업 ‘나는 아버지를 본다’도 뿌리 찾기를 통한 자아 정체성 확인이라는 면에서 같은 맥락이다.
이씨는 홍익대 조소과ㆍ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탈리아에서 수학했다. 이번이 9번째 개인전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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