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드리젠 발렌타인 기자-내가 본 히딩크 / (上)"팀내 평등중시…산악자전거 즐기는 모험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드리젠 발렌타인 기자-내가 본 히딩크 / (上)"팀내 평등중시…산악자전거 즐기는 모험가"

입력
2002.06.24 00:00
0 0

≪한국축구의 월드컵 4강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56)은 이제 국민적 우상으로 떠올랐지만 실상 한국국민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지극히 부분적입니다.지난해 1월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출신인데다 언론과의 접촉도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는 히딩크 감독의 삶과 축구철학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네덜란드 최대일간지 ‘데 텔러그라프’ 드리젠 발렌타인(39) 기자의 특별기고를 2회에 나눠 게재합니다.

스페인과의 8강전을 앞두고 원고를 보내온 발렌타인 기자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축구전문가이며 지금도 히딩크 감독과는 개인적인 전화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분이 두텁습니다. / 편집자주≫

보통 사람들처럼 히딩크도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축구를 위해서는 한 사람이 그 두 측면-인간 히딩크와 축구 감독으로서의 히딩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쉬운 일이다.

전자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가 네덜란드에서 선수와 코치생활을 할 때부터 축구와 사생활을 철저히 분리시켜 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의 자녀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심지어 아내의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다. 가족과 현재의 여자친구인 엘리자베스만이 인간 히딩크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 만나는 히딩크 감독에게선 인간적인 모습을 다양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매우 다정다감하며 여러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긴다. 그는 기자들에게 항상 훈련캠프를 개방하는 몇 명 안 되는 감독 중 하나다.

자신을 찾아 오는 사람들을 늘 진심으로 맞아준다. 언젠가 그의 경기가 끝난 지 두 시간 후 인터뷰를 요청하자 “언제든지 호텔로 오라”고 따뜻하게 답했던 것이 생각난다.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감독 시절 히딩크는 팀 내 노장 선수들과도 격의 없이 지냈다. 덴마크의 소렌 러비와 네덜란드 출신의 빔 키프트 선수는 히딩크 감독과 호텔 로비에서 커피와 담배를 나누며 늘 밤늦도록 인생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집을 떠나와 잠 못드는 선수들을 굳이 숙소로 돌려보낼 필요가 없다는 게 히딩크 감독의 생각이었다. 일단 선수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경기력에도 도움을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월드컵 시작 전 대전에서도 한국팀 스텝과 선수들의 가족이 자유롭게 선수들을 찾아올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이 경기장 밖에서의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읽은 것이다.

그는 스텝과 선수들에게 훈련이나 경기에서 철저히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하지만 언제나 선수 개개인에게 성격이나 특성을 발휘할 여지를 남겨 준다. 하지만 그는 이런 지도방식을 악용하려는 선수들을 곧바로 팀에서 방출, 팀 내 질서를 유지한다. 그런 선수들에게 히딩크 감독은 악몽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모험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산악 자전거를 타고 산에 오르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드라이브 하는 것을 즐긴다. 그는 삶과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는 때로 쾌락주의자로 묘사될 때가 있는데 순전히 긍정적 의미일 때만 맞는 말이다.

그는 전혀 물질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비싼 시가 대신 노동자들처럼 직접 말아 피우는 소박한 담배를 즐긴다. 그는 고가의 옷이나 차에 그다지 열광하지도 않는다.

한국에서 개인운전사 김모씨를 고용한 것도 특권의식에 젖어서가 아니라 길을 잘 몰라서였다. 운전사가 네덜란드인이었다면 히딩크는 아마 한국을 떠날 때 그를 데리고 갈 것이다.

휴식을 취하며 복잡한 머리속을 정리하고 싶을 때 히딩크 감독은 골프를 친다. 그는 소문난 골프광이다.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대표팀을 맡았을 때 호사가들은 그가 대표팀보다 골프 핸디캡에 더 신경쓴다고 비꼬았다.

그는 그러나 98 프랑스월드컵서 대표팀을 4강까지 올려놓음으로써 이러한 비난을 일축했다. 그것도 아무 사고 없이 말이다. 네덜란드팀은 원래 고향을 떠난 지 5일만 되면 불미스러운 사고를 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은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심리학을 응용해 팀 관리를 한다. 이것이 그의 주요한 성공 요인 중 하나다. 히딩크 감독은 스타급 선수 개개인의 역량을 믿는다. 그래서 선수들의 조직력과 팀 플레이 및 위기가 닥쳐왔을 때 조직력을 유지하는 방법 등에 중점을 둔다.

운전사 김씨가 그 좋은 예다. 김씨는 팀 내에서 별로 영향력도 없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히딩크 감독에게 그다지 필요한 존재도 아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한국을 떠날 때 아마도 김씨가 가장 슬프게 울 만큼 각별한 사이다.

히딩크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럼 없이 어울려 사는 작은 도시에서 자라났다. 그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았으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보살피곤 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런 모습을 팀 지도 방식에 활용했다. 그는 팀 내에서의 평등과 공정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또 대학에서 공부한 체육 교육학적 이론도 팀 지도에 응용한다.

히딩크 감독은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제대로 판단할 줄 안다. 또한 모든 것을 듣거나 알려고 하는 것이 쓸데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같은 명문클럽을 지휘할 때 히딩크 감독은 각 나라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최고 스타급 선수들을 다뤄야 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러한 선수들의 비위를 맞추고 편의를 봐주기 보다는 때로는 동등하게, 때로는 감독으로서 더 높은 위치에서 거리낌 없이 그들을 지휘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이 때때로 팀보다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해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얼마 전 한국팀에서처럼 말이다. 그는 팀의 조직력을 해치는 선수들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대로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는 특혜를 주기도 한다.

예컨대 황선홍 선수가 경기에서 제 역할을 다했다면 그는 게임 후 아이들과 차를 마시며 마음껏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수없이 말해 왔듯이 한국선수들은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남미선수들과 매우 다르다.

선수가 능력을 갖추고 그라운드 위에서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는 한 히딩크 감독은 사생활 등에 대해서 관용적이다. 그러나 능력과 상관 없이 사생활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선수들은 미련 없이 팀에서 쫓아낸다. 팀 분위기를 해쳐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최고 선수들을 잘 다루면서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들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면이다.

그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감독 시절 최고의 말썽꾼으로 알려진 브라질의 호마리우 선수를 길들여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히딩크 감독이 발렌시아로 자리를 옮겨 아인트호벤과 평가전을 치를 때 호마리우가 히딩크 감독을 만나자 마자 울음을 터뜨린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_이탈리아전이 끝난 뒤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과 호마리우를 비교했다. 축구 기술 측면에서가 아니라 다루기 어렵지만 제대로 길들이면 결정적인 순간에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선수라는 점에서 말이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선수들을 존중한다. 이것을 잘 아는 선수들은 히딩크 감독에게 실력과 성적으로 보답한다. 일단 그의 마음에 든 선수에 대해서는 끝까지 애정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시절 히딩크 감독은 은퇴한 선수들을 위한 특별 감독 훈련 코스를 만들어줄 것을 축구협회에 요청했다. 1년 후 이 코스를 통해 호날드 코맨, 프랑크 리지카르, 요한 니스켄, 러드 굴리트 등 4명의 유명 코치들이 배출됐다.

히딩크 감독은 98 월드컵 때 앞의 세 코치를 기용했다. 주위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두는 것을 경계하는 대신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그들을 억지로 잡아두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너무 많은 인재들이 몰려 있을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덜란드 드리젠 발렌타인 기자

●드리젠 발렌타인 기자는 누구?

유럽 최대신문 중 하나로 80만부를 발행하는 네덜란드 일간지 '데 텔레그라프'축구전문기자로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한일월드컵을 취재하고 있다.1986년 PSV아이트호벤 사령탑에 부임한 히딩크 감독과 인연을맺은 이래 두터운 친분을 쌓아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