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 등 주중 외교공관에 진입한 탈북자의 한국행을 놓고 한국과 중국간에 외교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도 탈북자 정책과 미국 망명 수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탈북자의 난민 지위 부여 여부와 미국 망명 허용 문제에 대해 그간 미국은 국제법과 미국 이민법 규정을 들어 탈북자는 정치적 난민이 아니며 따라서 미국행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 차례 밝혀왔다. 미 국무부의 리처드 바우처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미국행을 희망한 김한미양 가족 문제에 대한 논평에서 “미국 정부의 기본 입장은 신청자 본인이 미국의 국내나 국경에 있어 직접 면접이 가능할 때만 망명수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탈북자의 경우는 사실상 미국행이 불가능하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국무부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미국의 인권단체와 의회 일각에서 옛 소련 붕괴 당시 소련연방에 산재해 있던 유대인들과 태국에 거주하던 베트남인들을 미국에 난민 자격으로 데려오도록 규정한 ‘로텐버그 수정안’을 원용하거나, 이에 준하는 새 법안을 만들어서라도 탈북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탈북자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같은 기류는 마크 커크(공화당) 하원의원이 20일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탈북자 세미나에서 처음 제시한 후 21일 미 상원 법사위 이민소위의 탈북자 청문회에서 에드워드 케네디(민주당) 의원과 샘 브라운백(공화당) 의원 등이 잇달아 제기해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날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아서 듀이 이민ㆍ난민담당 국무부 차관보는 “탈북자를 대신해서 제3자가 그같은 신청을 할 수는 없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케네디 의원 등이 매년 일정수의 특정국 난민을 수용토록 규정한 현행 난민법을 수정, 한정된 중국내 탈북자들에 한해 준난민 자격으로 미국망명을 받아들일 용의가 없느냐고 거듭 추궁하자 전제를 달아 “일단 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케네디 의원 등은 “미국 난민법이 규정하고 있는 올해 특정국 난민 수용 인원은 약 7만명에 달한다”며 “이들 특정난민국 범주에 북한을 포함시키되 수용 가능 탈북자 인원은 행정부가 재량으로 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듀이 차관보는 이에 대해 “이는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안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하고 “당장 이를 실행하는 것은 무리지만 단계적 절차를 거쳐 검토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듀이 차관보는 또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에 난민촌을 건립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같은 선택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는 국제기구와 다른 민간단체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요청되는 사항”이라고 답했다.
듀이 차관보는 이어 “먼저 한국이 탈북자를 받아들이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중국과 북한 국경에 접근해 탈북자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등 단계적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답변은 의원들의 잇단 질문에 대한 답변이긴 하지만 일단 탈북자의 미국행에 물꼬를 터줄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케네디의원 등은 로텐버그 수정안을 탈북자들에게도 적용하기 위한 입법을 본격 추진하기로 하고 이르면 내주께 법안을 의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미 상원은 19일 탈북자 강제송환과 외교공관의 불가침권 보장을 골자로 하는 탈북자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며 하원도 이에 앞서 14일 만장일치로 탈북자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탈북자의 미국행에 호의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같은 의회의 분위기로 미루어 미 국무부의 소극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탈북자의 선별적 미국행이 조만간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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