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월드컵 / 열광의 한반도…120분내내 가슴졸이다 "와,이겼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월드컵 / 열광의 한반도…120분내내 가슴졸이다 "와,이겼다"

입력
2002.06.23 00:00
0 0

홍명보 선수가 다섯번째 키커로 승부차기 위치에 섰다.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전국은 돌연 정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전국 거리에 쏟아져 나온 600여만명, 그리고 집에서 일터에서 TV를 지켜보던 4,700만명 모두가 숨을 멈췄다.

4만2,000여명이 운집한 광주 월드컵경기장은 옆 사람의 침 넘기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마침내 공이 골문을 향해 날았다. 스페인 골키퍼 카시야스가 방향을 잃으며 왼쪽으로 기웃했고, 순간 공은 골네트의 오른쪽 상단을 꿰뚫었다.

“와! 이겼다!” 천둥과도 같은 함성이 전국에서 일시에 폭발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옆 사람을 끌어안았고, 기력을 모조리 쥐어짜 손을 내지르고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남녀도, 나이도, 직업도, 출신지도, 그 어떤 구별도 없었다. 이 순간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 오직 그 것만이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22일 월드컵 8강전 한국-스페인전은 한편의 완벽한 드라마였다. 서울시청 앞에서 경기를 지켜본 회사원 양형식(梁炯植·37)씨는 “아니다.

만약 드라마를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비웃음을 받았을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날 새벽부터 서울시청 앞, 광화문서부터 광주 금남로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남쪽의 모든 거리를 메우기 시작한 붉은 인파는 예의 열광적인 응원으로 오후 3시30분 경기 시작을 맞았다. 그러나 응원단의 목소리는 전과 달리 자주 리듬이 끊겼다.

대표선수들의 얼굴에는 피로의 빛이 역력했고, 질주하는 기관차와 같던 몸놀림도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쇄도가 번번이 한국 문전을 위협할 때마다 응원인파 속에서는 “아!~” 하는 짧은 탄식들이 연신 터져 나왔다.

그러나 후반전 10여분이 지나면서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태극전사들의 몸놀림이 서서히 살아나는 것을 본 사람들은 한껏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을용, 박지성의 슛이 잇따라 스페인 문전으로 날아 들었을 때는 “조금만 더”하는 안타까운 탄성과 격려의 함성이 거리를 덮었다.

연장전은 더 피 마르는 시간이었다. 120분간의 혈투가 끝났을 때 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단 한방울의 힘까지 그라운드에 쏟아낸 그들은 이미 승리자였다.

광화문에서 김재국(20·대학생)씨는 “더 이상 그들에게 요구할 게 없었다”며 “오직 고마울 뿐이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목이 메었다.

그리고 운명의 승부차기. 거대한 붉은 열정을 업은 한국팀은 끝내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믿을 수 없는 감격과 환희의 순간은 정확히 5시55분이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