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도왔다. 연장 전반 9분 스페인 모리엔테스의 오른 발 끝에 공이 걸려든 순간, 히딩크 감독은 절망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뇌리에는 ‘죽음(서든 데스)’이 스쳐갔다.골키퍼 이운재도 날아가는 공의 궤적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있었다. 손을 쓸 겨를이 없었다.
섬뜩할 정도로 시간이 정지된 느낌. 얼마나 지났을까. 신의 뜻이라던가. 공은 왼쪽 골대에 맞은 뒤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휴! 붉은 악마의 환호성이 다시 터져 나왔다. 히딩크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승리의 여신은 우리쪽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초반은 한국의 일방적인 열세였다. 전반 슈팅 수 0-5. 한국은 변변한 공격 기회 한 번 잡지 못했다.
패스는 스페인 수비진의 긴 다리에 번번이 걸렸고, 드리블은 깊은 태클에 끊겼다. 12분 김남일이 로메로의 태클로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왼쪽 발목을 감싸 쥐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 접질린 그 곳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기세를 높인 스페인은 한국의 양쪽 측면을 공략했다. 17분 푸욜이 오른쪽 터치 라인에서 드로잉 한 공이 페널티 지역 안으로 바운드됐다.
도사리고 있던 바라하가 오버헤드킥을 날렸다. 다행히 공은 골대 오른쪽으로 빗나갔다. 10분 뒤, 이번에는 왼쪽이었다.
센터링이 날아 오자 모리엔테스가 헤딩 슛. 공은 직선으로 골문 오른쪽을 향했다. 이운재가 펄쩍 뛰었다. 두 손을 쭉 뻗어 공을 잡은 뒤 오른쪽 골대에 부딪혔다.
아픈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숨 돌릴 틈 없는 공격에 한국 선수들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전반 48분 이에로의 헤딩 슛이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가면서 전반 종료 휘슬이 울렸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선수들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15분간의 짧은 휴식도 모자랐다. 모두들 지쳤다.
후반 들어 스페인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이탈리아 연장전 사투의 후유증 탓인지 한국 선수들의 다리는 무겁게 보였다.
3분 한국 오른쪽 진영에서 데 페드로가 날카롭게 쏘아올린 프리킥을 바라하가 헤딩, 한국의 골 네트가 출렁거렸다. 다행히 공격자 파울. 한국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15분 체력이 소진된 유상철을 이천수로 교체하면서 한국 공격은 다시 활로를 되찾았다. 20분 이영표가 오른쪽 코너킥을 올리자 최진철이 헤딩으로 떨어뜨렸다. 이천수, 박지성의 오른 발 슛이 이어졌다.
그러나 골키퍼 카시아스의 선방에 막혀 한국은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쳤다. 36분 후아킨의 오른발 슛이 오른쪽 바깥 골 네트를 흔든 것을 제외하고는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서는 한국이 제공권을 장악했으나 스페인의 기습공격은 위협적이었다. 연장전반 2분 후아킨이 이을용의 마크를 제치고 센터링, 모리엔테스가 헤딩 슛으로 연결했다.
다행히 센터링 직전에 골 라인을 벗어난 것으로 판정됐다.
9분에 모리엔테스의 슛이 골대를 맞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승리의 여신이 스페인에게 등을 돌렸다는 반증이었다.
월드컵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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