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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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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입력
2002.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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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적 상상을 즐기는 독서 취향을 배려한 어떤 이가 이 책을 선물했다. ‘자작’이 뭔지도 모르고 저자 또한 생소한 이름이었다.낯설음 탓인가, 첫 인상으론 그리 호기심이 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량이 적은 덕분에 선물한 이의 성의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쉽게 발동했던 모양이다. 이후 나는 칼비노의 팬이 됐다.

‘반쪼가리 자작’(민음사 발행)은 17세기 말, 터키와의 전쟁에 참전했던 아질울포라는 자작이 적의 포탄에 몸이 둘로 갈라진 채 귀향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한데 그 두 개의 몸은 선한 반쪽과 악한 반쪽이다. 대포라는 근대적 무기로 벌어지는 전쟁으로 분열된 몸의 묘사는 단순한 분열이 아닌, ‘선과 악’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분열’을 암시한다.

우리는 항상 선의 편일 테고, 저들은 예외 없이 악의 편을 뜻하는….

최인훈의 소설에서 보았던 선과 악의 대립, 그 타협할 수 없는 격정적 대립으로 야기되는 파괴된 인간상이 연상되었다. 물론 이러한 분열은 질리도록 보아온 우리네 현실과 다르지 않다.

소설에서처럼 여기서도 전쟁이 우리를 선의 편과 악의 편, 둘로 갈라놓았다.

우리가 선을 상징하는 편에 있다는 믿음, 그 정체성은 악을 증오하고 그것의 괴멸을 추구하는 의식ㆍ무의식의 지향과 맞물려 있다.

목사로서 교인들을 접하다 보면, 이러한 증오의 정체성이 사람들의 몸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다는 걸 보게 된다. 그리고 남을 통해서 나를 보는 것이 이런 점에서 가능하기도 하다.

한데 우리의 몸을 선과 동일시하는 한, 헤어나올 수 없는 또 하나의 현실은 선하지 않은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몸을 통해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선을 원하지만 그럴수록 악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 때문에 번뇌하게 된다.

‘반쪼가리 자작’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전쟁으로, 더 나아가 빗나간 근대화로 타협할 수 없이 갈라진 두 쪼가리의 분열된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넘어서야 하는 것은 ‘선과 악’이라는 정체성의 원리가 아닌가?

/김진호 목사ㆍ‘당대비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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