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는 아들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아들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덕의 소치를 통한하는 참회록이라 할 수 있다.2분짜리의 짧은 사과문 곳곳에는 ‘고개를 들 수 없다’ ‘책임을 통절하게 느낀다’는 등의 절절한 표현들이 많았다.
특히 ‘저의 처신에 대해서도 심사 숙고했다’는 대목은 거취까지도 고민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어 참회의 고통을 극적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대국민사과가 개인적 차원의 자괴나 반성만은 아니다. 오히려 아들들 문제를 정치적 차원에서 매듭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기대의 성격이 더 강하다.
사과문 말미의 ‘국민 여러분의 아량와 이해’ ‘한국팀의 4강 축원’이라는 언급은 ‘이제 앞으로 나가자’는 비유로 볼 수 있다.
3남 홍걸(弘傑)씨에 이어 차남 홍업(弘業)씨까지 구속된 이상 이 문제를 더 이상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자는 뜻이 내포돼 있다.
김 대통령이 홍업씨 구속 후 곧바로 대국민사과를 한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마음의 정리를 끝냈다는 의미이다.
김 대통령은 홍걸씨 소환을 앞둔 지난달 6일 박지원(朴智元) 비서실장을 통해 대국민사과를 했을 때 아들들의 사법처리를 각오했던 것 같다.
때문에 김 대통령은 아들들의 구명(救命)에 미련을 두는 아버지의 입장 보다는 아들들 문제로 인한 혼돈 국면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통치자의 입장에 서서 홍업씨 구속을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월드컵도 신속한 대국민사과의 한 배경이 됐다. 한국대표팀의 선전으로 월드컵이 국민 모두의 축제가 됐고, 22일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이 벌어지는 마당에 대국민사과를 늦출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대국민사과 이후다. 정치권이 김 대통령의 사과와 호소에 부응할 지는 미지수다. 벌써부터 “사죄의 말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여전히 아태재단의 사회 환원을 주장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이런저런 비리를 끊임없이 캐며 이슈화를 시도하고 있다.
청와대도 이를 인식한 듯 사과문 발표 후 “아태재단의 처리에 대해 심사 숙고해야 할 것으로 본다”는 설명을 했다.
상징적인 후속 조치들이 있을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기는 얘기이지만 정치권과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지는 두고 봐야 한다.
김 대통령의 대국민사과가 국면을 반전시키려는 의도도 함께 갖고 있지만, 무한경쟁의 대선정국은 낙관적인 전망을 유보하게 하는 상황이다.
/이영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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