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있는 날은 옛날 명절 기분이 난다. 때때옷처럼 ‘붉은 악마’ 옷을 차려 입은 꼬마들이 신이 나서 골목을 달려 나간다.역시 붉은 셔츠 차림의 부부도 흥분된 표정으로 꼬마 뒤를 따라 거리 응원장으로 향한다. 학교나 직장에도 붉은 옷이 점점 늘어난다.
옷차림과 응원도구도 한층 멋스러워졌다. 이제는 붉은 스카프와 모자, 태극기, 북, 뿔피리, 비닐막대 등으로 다양해지고, 어느덧 페이스ㆍ보디 페인팅도 자연스럽다.
응원 모습도 다른 시위와는 사뭇 다르다. 10~20대 젊은이가 주도하고, 다른 층이 뒤따라가는 새로운 문화다.
■ 응원장에는 종교의식과 유사한 기구(祈求)와 환희의 분위기가 넘친다. 월드컵 축구에는 종교에 버금 가는 열광적 요소가 있다.
포르투갈과 경기가 있던 14일 시청앞 광장에서는 기독교 신자 100여명이 십자가 목걸이를 흔들며 “16강 코리아, 주 예수”를 외치기도 했다.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가 공부에 정진하던 승려들도 한국경기 때는 예외적으로 TV를 보며 응원한다는 기사를 보며 많은 이들이 미소를 지었다.
■ 불교계가 불교의 상징이기도 한 목탁을 응원 도구로 활용하려 한 발상의 변화는 더욱 놀랍고 흥미롭다. 불교계 젊은이들은 목탁을 들고 나가 신나게 응원도 하고 불교홍보도 할 요량으로 예행연습까지 마쳤다.
그러나 한국 팀이 골을 넣으면 지나치게 흥분해서, 신성한 목탁을 너무 난타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신중론이 제기되었다.
결국 포르투갈전과 이탈리아전이 있던 날, 스님과 젊은 불자들은 서울 조계사 앞마당에서 경기 전 1시간 가량 목탁을 두드리며 승리를 기원하는 것으로 자제했다.
■ 4강을 바라보는 지금 과열응원이 가져올 수 있는 전체주의적 마취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승리에 굶주려 있다’ 는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아직은 우리가 더 승리를 희구하고 응원에 도취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패배의 부정적 정서에 너무 깊이 침윤돼 왔기 때문이다. 내 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은 부정의 정서를 싱그런 긍정의 정서로 대치할 절호의 기회다.
때문에 응원장으로 향하는 우리의 의식 저변에는 종교와도 같은 강력한 희구가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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