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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성악가 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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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성악가 조수미

입력
2002.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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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던 2002년 월드컵 경축 전야제. 조수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월드컵 홍보대사와 2010 엑스포홍보대사,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시상식, 남북 교류를 위한 남북 음악인 만남의 장 등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국가 행사에는 늘 대한민국을 대표해 그녀가 있다.월드컵 8강 진출이 29조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카라얀이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극찬했던, 국제사회에서 우리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해 온 그의 가치는 과연 얼마인가.

그는 어릴 때부터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대음대 성악과 입학 당시 사상 최고의 실기점수.

1983년 대학 2학년 때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졸업 전까지 나폴리 존타 국제 콩쿠르를 시작으로 비요티 국제 콩쿠르, 베로나 국제 콩쿠르 등 세계적인 성악 콩쿠르에서 무려 6번이나 1등을 차지했다. 1993년에는 당해 최고의 소프라노에게 수여하는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 수상했다.

남동생의 권고로 대중음악도 즐겨 듣는다. 크로스오버 곡의 수용. ‘Only Love’는 80만장이 팔렸다. 고국에서 하게 되는 각종 이벤트성 콘서트, 한국적 특수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유연성과 함께 5-6년 전부터 사람에게 집착하는 마음도 다스려진 것 같다.

곰 인형을 병적으로 좋아한다. 150개 가량 있다. 어릴 적 인형 놀이 같은 것은 허용되지 않았었다. 초등학교 2학년. 사촌이 1주일 정도 같이 지다가 헤어지게 됐다. 절망 그 자체.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공기같이 자연적인 정서적 교류. 그 부족함에 대한 갈망. 물건에 대한 소유욕은 없다. 사람에 대한 것은 주체가 안 된다. 대학 1학년의 열정적인 사랑. 사랑을 노래할 수 있게 한다. 헤어짐엔 분명 인간에 대한 서투른 집착이 깔려 있다.

2등은 용납되지 않았다. 체벌이 없어도 어머니의 꾸중을 듣는 20분의 긴장은 방이 빙빙 돌아갈 정도로 힘든 것이었다. 야단 그 의미 이상이었다. 어머니의 말은 조금의 의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동조는 당연하고 어머니 가르침은 그대로 수용된다. 사춘기에도 반항의 기억은 없다. 어머니 상은 그대로 자신이 된다. 그 어머니화한 자신이 스스로를 완벽하도록 지배한다.

당시 밀어닥친 사랑을 위해서 음악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의 어머니에게 반항한 것만이 아니다. 내면화한 어머니에게도 철저히 반항한다.

그것은 자기를 찾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그 삶에도 통쾌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답은 아니었다. 그 한계 때문이다. 주체할 수 없는 소유욕. 그 욕구는 결국 욕구의 주체에게 욕구의 파멸을 안겨준다.

새로운 삶은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유학으로 결정된다. 당연한 해결 방안이다. 그 의미는 독립이다. 주체할 수 없는 자유와 희열이 동반된다. 성숙한 독립이 진행된다. 내면의 어머니는 새로 독립한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이제는 다른 인간에게 정신을 잃고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대상은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된 음악이다. 비로소 음악이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모차르트를 싫어한다. 고급스런 음악성. 음악적 기술이나 기교 때문이 아니다. 아직까지 다른 사람의 만족스런 모차르트 연주를 보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어렵다.

아직 그 정도 고급스런 인격을 만족스럽게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무섭다. 생각하면 멀미가 난다. 그래서 잘 듣지 않는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한다. 그 날은 멀지 않았다.

도도하지만 상대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지휘자 로린 마젤과의 일화다. “거의 절대 음감을 갖고 있다”고 극찬을 받는다. 하지만 즉석에서 그 말을 정정하도록 한다. ‘거의’가 아니라 ‘완벽한’절대음감이라고.

결국 로린 마젤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외친다. ‘브라보’천재와 거인의 만남. 일정 거리 이상의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이처럼 당당하다

시를 쓰고 예술가적 자질을 갖고 있던 어머니. 그 삶은 수용되지 않았다. 여성으로서의 허망한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는 자신의 삶이 복제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절대 집에 있지 말고 큰 일을 해야만 했다. 공부 끝날 때까지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보상은 철저했다. 철두철미하고 철저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허망하지 않은’ 삶이 실행된다.

인간은 길들여지는 동물이다. 길들여지면 친숙해진다. 어느 순간 감동이 찾아온다. 미지의 문이 열리고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조수미가 추천하는 클래식에 길들여지는 방법이다. 길들여졌다. 그러나 이미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다. 자신이 길들여진 방법이다. 이제는 유연함까지 갖추고 있다.

가방 두 개와 호텔 방. 1년에 11개월을 그렇게 산다. 세상 누구를 만나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음악과 일도 완벽하다.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 어머니는 가장 친한 친구다. 가슴 속의 그리움과 외로움은 얼마든지 견디어 낼 수 있다. 당장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아기를 갖고 싶다. 친밀함. 그것은 한번도 만족하게 성공해본 적 없는 숙제다.

●약력

▲1962년 서울출생

▲1983년 서울대음대 성악과 재학중 이탈리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유학

▲1986년 이탈리아에서 '리골레토'질다 역으로 트리시스 극장 데뷔

▲1993년 이탈리아 황금기러기상 수상,오페라'그림자 없는 여인'으로 미국 오페라부문 최고 음반에 선정

▲1995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1997년 프랑스 비평가선정 성악부문상

▲'그림자 없는 여인''카니발''온리러브'(80만장 판매)'빅토리'등 30여종의 음반.

■지인들이 보는 조수미 / 大家의 확고함과 유연함 갖춰

“높이 있는 사람만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진정한 ‘대가’의 태도를 갖춘 사람이다. ”(소속사 SMI 김형식 대표)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 OST 주제곡 ‘나 가거든’은 정상급 성악가의 경이적인 변신이다. 요염하면서 발랄한 가요창법이 귀를 의심케 한다. 조수미에게서 정통 클래식의 ‘물’을 빼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누구의 조언도 없이 민첩하게, 스스럼없이 변신을 시도했다. 김 대표는 “처음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망설였지만 일단 참여하기로 마음 먹고 곡을 듣자마자 수미씨가 먼저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며 새로운 창법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유연하고, 스스로 확신이 서면 누가 뭐라하든 흔들리지 않는다.

프리마돈나의 화려하고 당당한 인상 때문일까. 그에 대해서 ‘도도하다’는 인상평이 심심찮게 붙어 다닌다. 1997년부터 그의 독창회를 대부분 지휘해온 경기도립 팝스오케스트라 지휘자 최선영씨는 “뜻이 안 맞는 지휘자와는 의견충돌이 많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일찍이 20대에 대지휘자 카라얀에게도 당당하게 음악적 의견을 개진해 그를 놀라게 했던 조수미, 게다가 세계 각국에서 정상급 공연을 수없이 보아온 만큼 일에 관한 한 거의 절대적인 자기확신과 기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물쩍’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특히 논리적인 설명 없이 지휘자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참지 않는다.

하지만 최선영씨는 “무대 밖에서는 정이 많고 소탈한 사람”이라고 전한다. 공연 후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일일이 ‘수고했다’고 적은 카드나 초컬릿 등을 건네준다. 다른 일정이 없으면 호프집, 노래방까지 가서 뒷풀이를 주도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다.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할 때 ‘전시용’포즈만을 연출하는 일부 유명인사와는 달리, 카메라가 있든 없든 침 흘리는 장애아동에게도 거리낌없이 손길을 내밀고 보듬어준다.

사람 많은 식당 같은 데서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사인을 요청해도 얼굴 한 번 찡그리는 법 없이 일일이 친절하게 응대한다. 최씨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정이 많은, 전형적인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김병후의 여성타무' 이번 회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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