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이주일(70)제2의 고향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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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70)제2의 고향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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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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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한국축구대표팀과 잉글랜드의 평가전을 분당 집에서 본 적이 있다.어느 경기장에서 열리는지도 모른 채 TV 중계를 보는데 경기장 주위가 무척 낯이 익었다. 자세히 보니 서귀포였다.

지난해 한창 공사중일 때 보니 경기장 반 이상이 땅 밑으로 들어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제주도의 거친 바닷바람 때문에 지하를 파서 세운 것이 분명했다.

제주도는 내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분당 집 다음으로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이 바로 그곳이다.

서귀포시 보목동에는 1990년 구입한 아담한 농가주택이 있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내려갈 수 있다.

평소에도 만사가 귀찮아지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면 그 집에서 며칠씩 머물곤 했다. 4월에는 보름 동안 좋은 공기를 맘껏 쐬려고 비행기 표까지 예약해놓았는데 결국 의사의 만류로 가지 못했다.

70년대 무명시절 제주에서 공연을 할 때 소원 한가지가 있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물 좋고 공기 좋은 이곳에서 살아야지. 노후에는 반드시 이곳에 그림 같은 별장을 짓고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야지’.

당시 나는 서울 상계동 무허가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한 이 소원은 결국 20여 년 후에야 이뤄졌다.

서귀포 주택과 관련한 웃지 못할 사연이 하나 있다. 그 집은 방 2개에 18평짜리 소규모 농가로 2,000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92년 14대 총선에 출마한다니까 이 집이 호화별장으로 소문이 났다. 사람들은 집 뒤의 산과 들판을 가리키며 “저 땅이 모두 이주일씨의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국세청 조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답답했다. 그래서 정주영(鄭周永) 국민당 대표와 수행비서, 국민당 출입기자들을 데리고 ‘현지시찰’을 했다.

워낙 볼품없는 그 집을 보자 기자들까지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쓸 정도였다. 정 대표와 나, 그리고 비서 한 사람이 누우니 큰 방이 꽉 찼다.

정 대표도 껄껄대며 이렇게 말했다. “세 사람이 누우니까 바늘 세울 틈도 없는 이 집을 호화별장이라고 하면 소가 웃는다, 소가 웃어.”

제주에는 술 친구도 많다. 제주시 연동에 큰 빌딩을 갖고 있는 임무박(林茂博) 회장을 비롯해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송형록 임동주 이철수 백재기 사장 등은 내가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같이 술을 마셨던 주당들이다.

그들은 “공기 좋은 데서 술 마시면 술 마신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언제나 내게 술을 권했다. 지금은 내가 아픈 것을 제일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 중 임무박 회장 이야기만 잠깐 해야겠다. 그는 아는 사람들이 제주에 놀러 오면 만사를 제쳐놓고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는 사람이다.

낮에는 골프와 관광, 밤에는 술자리. 이렇게 24시간 내내 손님에게 극진한 대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임 회장이 대한민국에서 유일할 것이다. 정계 관계 문화계에서 임 회장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며칠 전 국립암센터 538호 병실에 누워있는데 임 회장과 여무남(余武男) 대한역도연맹회장이 눈이 퉁퉁 부어 들어왔다.

내가 “또 대낮부터 술을 펐냐?”고 하니까 임 회장이 “아이고, 형님. 무사하셨네요”라고 말하며 나를 부둥켜 안는 게 아닌가.

나는 538호와 518호를 오가며 치료를 받는데 그날 그들은 518호를 갔었고, 마침 그때 518호 환자가 위독해 응급실로 내려간 것이었다.

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형님, 큰일 난 줄 알았습니다. 형님만 나으면 내 빌딩을 드릴 테니 제발 빨리 나으세요.” 이런 친구들이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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