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과 파란을 연출한 한일 월드컵이 21일부터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8강 결승 토너먼트에 돌입한다. 매 경기마다 체력을 앞세운 치열한 공방전이 거듭된 이번 대회는 스타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기술축구보단 조직력과 전술싸움이 승패를 가늠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한국일보는 한일월드컵을 취재중인 세계 9개국 주요 언론관계자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대회의 질(質)과 특징, 경기장ㆍIT시설 등 인프라와 문화환경, 한국인, 안전문제 등 중요한 5가지 사항에 대해 중간 평가와 의견을 들어봤다.
■ 체력과 빠르기의 조직축구 약진
이번 대회는 한 마디로 ‘기술축구의 후퇴, 체력 전술축구의 약진’으로 요약된다. 세계축구의 변방 혹은 약체로 꼽혀온 한국을 비롯해 미국, 터키, 세네갈 등이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스피드,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기술축구의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등을 넘어 이번 대회를 ‘이변의 연속’으로 이끌었다.
이탈리아 최대 스포츠전문지인 라 가제트 델로 스포르트의 디 세사레 세르지오(50)국제스포츠 담당국장은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의 기근이 두드러진다. 호나우두(26ㆍ인터밀란)와 라울(25ㆍ레알 마드리드)은 이미 알려진 인물이다. 미국의 도노반(28ㆍ새너제이)과 클린트 매시스(26ㆍ메트로스타)가 새롭게 주목받는 데는 개인기 보단 조직력과 빠르기가 승부의 관건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겔 에스카밀라 스페인 국영 라디오방송(ESP)스포츠담당 국장은 “세계축구의 톱 상위그룹과 중간 그룹간의 수준 차가 크게 줄어들어 실수나 방심이 승패를 가른다” 며 “따라서 경기 내용보다는 승부에 대한 강한 투지가 큰 변수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각국간 수준차가 좁혀진 배경에는 한국의 히딩크, 일본의 트루시에, 세네갈의 브뤼노 메추 감독 등 각국이 세계적 명장 영입을 통해 뛰어난 전술 구사와 현대축구 접목으로 경기력 발전을 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이들은 지금까지 경기내용의 기술(질)부문은 5점 만점에 3.5점, 전술은 4점, 창조력은 3점을 주어 1998 프랑스 대회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했다. 우승은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등 강호들이 탈락, 예측이 불가능하다’(4명)가 가장 많았고, 브라질(3명)과 영국(2명)를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다.
16강전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스페인-아일랜드, 영국-아르헨티나, 세네갈-덴마크, 한국-이탈리아전을 꼽았다.
■경기 인프라 사상 최고 수준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포함한 국내 10개 축구장과 보도관련 각종 IT시스템 등 인프라 환경은 어느 대회보다 뛰어났다는 평가.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월드컵 개최 후 경기장 공급과잉으로 인한 향후 활용방안에 대해 궁금해 했다.
안드레스 셔멀(44)독일 DPA 스포츠담당 팀장은 “베켄바워 등 2006년 독일 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한국과 일본의 경기장 20곳을 모두 둘러보고 독일이 과연 이같이 뛰어난 시설을 갖출 수 있을지 우려할 정도였다”고 칭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장으로는 서울과 서귀포, 수원경기장을 꼽았다.
한편 이들이 이번 대회기간 중 최악의 이슈로 꼽은 것은 교통문제. 한 경기장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거리와 소요시간 등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특히 조별리그가 한일 양국 20곳에서 매일 번갈아 열려 외신 기자들은 “월드컵 취재보다도 비행기와 택시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며 “이동하다 보면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분산 개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장 피에르 갈루아(55) AFP스포츠담당국장은 “월드컵 사상 처음 아시아에서 대회가 열렸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지만 경기마다 공석사태 등 티켓판매 스캔들은 당초 한일 양국 20개 경기장에서 분산개최를 결정할 당시부터 이미 예고된 사항이었다”고 지적했다.
■ 친절미소로 언어소통 어려움 극복
한국에 대한 이들의 인상은 남달랐다. 특히 서울 개막전에 이어 부산, 대구, 대전, 수원 등 경기장마다 열린 지역 특유의 행사는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필립 버니스(40) 영국 BBC TV 스포츠팀장은 “거리마다 열린 행사와 전통축제는 한국의 미와 월드컵의 열기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며 “한국인들의 축구에 대한 열광적인 모습에도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월드컵 한국조직위원회(KOWOC)의 활동과 운영에 대한 평가도 비교적 높은 편. 반 에스 에릭(56) 네덜란드 공영TV 국장은 “한국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함과 성실한 자세는 언어소통의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며 “거리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가 되는 한국인들의 열정은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안전문제 역시 완벽에 가까웠다는 평가였다.
장학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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