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밤 10시 18분. 설기현이 골이 넣는 순간부터 이성을 잃지 않았다면 분명 ‘이성’에 문제가 있다.한국 축구가 연출한 이런 장관을 본 것은 평생 처음이다. 아무리 월드컵 냉소주의자라 한들, 떼로 모여 붉은옷 입고 설쳐대는 것이 싫다 한들, 이 순간은 그저 감동, 감동 뿐.
안정환의 골든 골로 8강 진출이 확정된 후 기쁨에 겨운 소식을 전하느라 전화기들은 불통이다. 다음 주 영화를 개봉하는 한 제작자와 통화를 했다.
“걱정 반, 흥분 반”이라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 8강, 4강에 진출하면 누가 영화를 보러 올 것이냐는 우려.
이 시각, 다른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한 배급사의 관계자 역시 마냥 흥분할 수만은 없었다. 주말 개봉하는 영화의 22일 예매 스코어가 나쁘지 않은 상황.
강남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3회까지 예매가 매진됐는데, 문제는 한국과 스페인의 월드컵 4강전이 있는 바로 그날 누가 영화를 볼 것이냐는 것이다.
19일부터 아마 예매 취소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지방에 자리한 몇몇 날개극장(변두리극장)은 아예 22일 3회 이후에는 영화 상영을 중단한다는 소식이다.
극장에서 축구를 관람한 후 영화 상영이 이어진다면 어느 정도 관객을 기대할 수 있다.하지만 그 어떤 영화도 축구와 ‘다이 다이(일 대 일)’로 붙어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묘한 것이 제작사나 배급사의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의 목소리가 한결 같이 흥분된 분위기.
이들은 “걱정이다” “큰 일 났다”고 말하면서도 목소리의 분위기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이다.
결국 이들은 “설기현이 일 낼 줄 알았다”거나 “안정환은 역시 멋지다” 등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사익(社益) 때문에 갈등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은 ‘사익(私益)’. 그러나 이 사익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기쁨의 결정체로 이 사익이 모여 국익(國益)이 되는 묘한 계산법이 성립된다.
“와, 골 골 골인. 이거 누구 영화야? 어, 내가 만든 영화가 아니네! 앗, 또 골 골인!” 요즘은 이런 분위기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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