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이달 말로 7개월 장기공연의 막을 내린다.지난해 12월 2일부터 LG아트센터(1,049석)를 점령한 유령은 30일 244회 공연을 끝으로 무대를 떠난다. 대극장 규모로는 국내 최초의 장기공연이자 최고의 흥행작으로 남게 됐다.
숫자로 본 유령의 기록은 놀랍다. 국내 공연사상 최대 규모인 제작비 110억원, 총 매출액 192억원, 관람인원 24만명, 유료 객석 점유율 평균 94%이다.
이 작품에 투입된 인력은 사전작업 3개월을 합쳐 10개월간 하루 170명(배우 34명, 오케스트라 18명, 무대ㆍ기획ㆍ행정 스태프 110명), 연인원 5만 5,000명에 이른다. 유령이 어지간한 중소기업 이상의 고용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이러한 성공은 작품의 완성도 못지않게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마케팅 덕분이다. 유령은 치밀한 시장조사와 전략 수립에 이어 본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갔다.
전월 티켓 예매율이 70%를 넘을 때 다음달 티켓 판매에 들어감으로써 안 팔린 채 남는 자리를 최소화했고, 기업을 대상으로 한 단체 판촉을 강화해 티켓 판매량을 높였다.
금융권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70개 기업이 고객 사은용 등으로 ‘오페라의 유령’ 티켓을 200~5,000장씩 구매, 전체 티켓 판매량의 15%를 차지했다. 여느 공연의 단체 판촉 비율은 높아야 5% 정도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떼돈을 번 건 아니다.
티켓 판매로 거둔 192억원에서 제작비와 부가가치세, 문예진흥기금, 로열티, 예매처 티켓 판매 수수료 등 비용을 뺀 순익은 20억 원 정도.
이 돈은 제작사인 제미로와 6개 투자사가 나눠갖게 되므로 각자의 몫은 더 작아진다.
특히 티켓에 포함된 부가가치세(10%)와 준조세 성격인 문예진흥기금(6%) 납부금이 각각 17억원, 11억원이나 된다.
이번 공연의 마케팅을 전담한 ㈜클립서비스의 설도권 대표는 “열심히 벌어서 세금으로 다 뜯겼다는 억울한 심정이 없지 않다. 이래서야 누가 흥행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작을 만드는 모험을 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거둔 진짜 성과는 돈보다 다른 데 있다는 것이 설 대표의 설명이다.
그 첫째는 공연의 문화산업화 가능성이 확인된 점이다. 이번 작품이 국내 투자사를 끌어들인 것도 청신호로 보인다.
제작비 110억 원 중 사전제작비 50억원은 제작사인 제미로가 20억원을 대고, 코리아픽처스의 20억원 등 6개사가 투자했다.
유령의 성공은 공연상품에 대한 투자를 촉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더 큰 소득은 뮤지컬 제작의 선진 노하우를 얻은 것이다.
이 작품의 오리지널 제작사인 RUG의 스태프 37명이 호주에서 날아와 국내 스태프와 함께 작업하면서 무대ㆍ의상ㆍ조명 등 기술적인 지식 뿐 아니라 장기공연을 운영하는 능력을 전수했다.
이는 국내 뮤지컬 제작 방식과 수준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연계 일각에서는 유령의 성공이 돈 되는 공연에만 투자가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져올 것 으로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클립서비스 설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당장은 그럴지 모르지만, 장기적 으로 보면 이국 선진 기술을 배우고 투자를 끌어들여 공연예술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유령의 효과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개 투자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장기공연이 가능한 뮤지컬 전용극장을 건립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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