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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69)여무남 회장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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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69)여무남 회장과 나

입력
2002.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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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전국에서는 나를 격려하는 수백 통의 편지와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정말 감사하다.그분들을 위해 봉사한 것도 없는데 쑥스러울 뿐이다. 오늘은 그분들 중에서도 한결같이 병실을 찾아준 여무남(余武男) 대한역도연맹 회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유랑극단을 따라 부산에 내려가 있던 1970년대 초 어느날.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인 기린살롱의 여사장 우궁자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대학원까지 나와 술집을 경영하던 사람으로, 당시 술꾼 중에서 그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60년대 중반 내가 서울 스카라극장 주변을 배회하다 알게 된 영화배우 이무정(李武正)씨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녀는 나를 술집으로 부르자마자 “소개할 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이 끝나자 등장한 사람이 바로 여 회장이다.

당시 그는 부산세관에서 세관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첫 인상은 완전한 날 건달이었다.

보자마자 쌍소리를 해대고 폭탄주를 먹이는 그의 얼굴은 ‘우락부락’ 그 자체였다. ‘부산의 오야붕(대장)이구나. 잘못 걸렸군’. 우리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로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 술을 마셨다. 내가 지금까지 가진 술자리의 반은 그와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술은 얼마나 잘 마시는지…. 체질까지 이상하다. 같이 술을 퍼 마셔도 아침이면 ‘언제 술 먹었느냐’는 식이다. 그리고 쌍소리는 기본이고 자기보다 열 살 많아도 무조건 반말이다.

그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90년대 초 제주의 한 고위공직자와 여 회장,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폭탄주가 돌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날 처음 만난 그 고위공직자가 술을 전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 회장은 잔을 건네서 안 받으면 자기가 마시는 식으로 무려 다섯 차례나 폭탄주를 권했다.

마지막 여섯번 째 폭탄주. 또 안 받자 여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새끼야, 네가 이것이 돈이어도 안 받아 먹어?” 그 공직자는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자기의 정보원을 총동원해 “저 놈, 도대체 어떤 놈이야? 손 좀 봐줄 방법 없어?”라고 들쑤시고 다닌 모양이다.

그런데 그 정보원들의 반응이 한결 같은 게 아닌가. 오히려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잘 사귀어 보세요”라고 말했다.

물론 나중에 들은 자초지종이다. 얼마 후 그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불쑥 “형님”이라고 말하며 빈 잔을 여 회장에게 내밀었다.

결국 그는 난생처음 폭탄주 한 잔을 받아 마셨고 그 자리에서 큰 대자로 뻗었다.

이런 식이다. 그는 거짓과 격식이 없다. 상대방이 어려울 때면 빚을 내서라도 도와주고 뛰어준다.

그가 처음 만난 국회의원과도 다음날이면 형 동생 사이가 되는 것도 그의 순수한 마음씨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 사이가 틀어지면 주위에서 그에게 중개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그의 친화력과 리더십 때문이다.

얼마 전 그가 분당 집으로 술병에 안주까지 싸 들고 와서 3, 4시간 동안 혼자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도대체 술 좋아하는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내가 뭐라고 싫은 소리를 하자 그는 “이거 먹고 싶으면 빨리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말했다. 눈 앞에서 좋은 말만 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얼마나 훈훈한 가족 같은 사람인가.

그는 지금도 몸에 좋다는 전복이며 영덕 대게, 산삼 따위를 보내준다. 이틀이 멀다 하고 전화도 한다.

전화를 통해 들리는 것은 온통 쌍소리 뿐이지만 나는 그 소리가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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