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동남아를 다시 군사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의도를 적극적으로 보이고 있다. 1994년 반미 여론에 밀려 필리핀에서 철수했던 미군은 최근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올해 1월부터 필리핀 남부에 파견하고 있는 미군을 장기 확대 주둔시킬 뜻을 강력히 표명했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일 워싱턴에서 예정된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필리핀에서의 미군의 군사활동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군사협력협정(ACSA)을 개정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미군 규모 등 구체적 내용은 거론되지 않으리란 전망이지만 필리핀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까지 아우르는 전진기지로 활용한다는 게 미국의 복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미 필리핀 정부와의 합의 하에 1월부터 필리핀 남부 바실란섬에 주둔 중인 미군은 다음달 말까지로 돼 있는 주둔 기간을 연장하고 규모도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수 차례 흘려왔다.
이슬람 과격무장단체 ‘아부 사야프’ 의 소탕이 표면적 이유지만 근본적으로는 반미 성향의 무장 게릴라 단체가 필리핀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인근 국가에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지난 주 필리핀을 방문한 자리에서 파견 병력을 1,200여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리고 장비도 대폭 확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쟁점은 이 같은 미군 주둔이 필리핀 헌법에 배치되는 데다 반미 감정으로 지역 갈등이 첨예한 현 상황을 더욱 긴장 속에 빠뜨릴 수 있다는 데 있다.
1987년 개정된 필리핀 헌법과 양국간 ‘방문군 협정’ 에 따르면 외국군은 한번에 4주 이상 필리핀 영토에 머물 수 없으며 필리핀 영토 내에서 전투행위도 할 수 없다.
미군은 필리핀 군대의 병참, 교육으로 임무를 한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17일 반군과 처음 직접 전투를 벌여 양측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개입의 강도를 더욱 높여가고 있다.
필리핀 야당은 “1992년 수비크만(灣)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를 반환하고 떠났던 미국이 제국주의의 야심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고 주장하며 아로요 대통령의 친미주의를 맹비난하고 있다.
아부 사야프 소탕이라는 명분도 설득력이 약하다. 남부 민다나오섬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아부 사야프가 과거 알 카에다와 접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긴밀한 관계는 아니며 9ㆍ11 테러와는 무관한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핵심 무장조직원 규모도 필리핀 정부의 대대적 단속으로 급감해 20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은 아부 사야프를 내세워 동남아 테러조직을 압박하고 중국에 대항, 이 지역의 패권적 지위를 되찾겠다는 전략적 포석을 갖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아부 사야프는 어떤 조직
1993년 지도자 아부 사바야의 지휘 아래 민다나오섬 서쪽 바실란섬과 술루 군도를 중심으로 이슬람 독립국가 건설을 표방하고 있는 이슬람 과격 분리주의 무장게릴라 단체. 1980년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서 지원병으로 참전했던 무자헤딘(전사)이 조직했다.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MNLF의 분파 조직인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과 함께 필리핀의 이슬람 분리주의 3개 파벌 중 하나이나 가장 과격한 것으로 악명 높다.
아부 사야프의 급진노선이 확산된 것은 필리핀 내 최대 이슬람 세력인 MNLF가 20여년 간에 걸친 투쟁을 포기하고 중앙정부와 평화협상을 시작한데 따른 대다수 회교도들의 배신감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1993년 12월 다바오시 성당 폭탄테러 사건, 1994년 6월 바실란섬 버스 납치 사건 등이 아부 사야프의 소행으로 밝혀졌으며, 1993년 세계무역센터(WTC) 지하주차장 폭탄테러 사건도 아부 사야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파키스탄 내 이슬람 세력을 비롯해 아랍권의 여러 이슬람 단체들과 무기 인력 등을 교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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