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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계속된다 / (상)히딩크의 용병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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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계속된다 / (상)히딩크의 용병술

입력
2002.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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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성(城)을 지키는 병사는 필요 없다. 모두 나가 싸우라!”아주리 군단의 침공으로 붉은악마군이 벼랑 끝에 몰리자 히딩크(56) 장군은 이렇게 외쳤다. 전쟁(월드컵)에서 다음이란 없다. 패하면 곧 죽음(토너먼트). 싸움에 진 장수에게 남은 병사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사즉필생(死卽必生).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죽을 목숨. 죽기를 각오하면 반드시 살 길이 열리는 법. 나에게는 아직 3명(황선홍 이천수 차두리)의 용감한 병사가 있지 않은가.

히딩크 장군은 400여년 전 “전하, 저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며 울돌목으로 나아가던 조선의 영웅 이순신을 떠올렸다. “그래, 너희들도 나가라. 그리고 적의 성문을 부수어라.”

이제 성을 지키는 병사는 둘(최진철 이운재) 뿐이었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후반 20분) 어둠이 오기 전에 적의 수비병을 쓰러뜨리고 굳게 빗장이 채워진 성문을 열지 못하면 전멸을 각오해야 한다.

기회는 이번 뿐이다. 히딩크 장군도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자칫 0_2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지만 당장 1_1을 만들지 못하면 기회가 사라질지 몰라 선택했다.”

장군은 차가우리 만치 냉정했다. 다 잡은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안달하는 아주리의 노회한 장수 트라파토니(63)가 아니었다.

장군은 전투대형부터 바꾸었다. 4-4-2가 아니라 1-4-5의 포진. 더 이상 적의 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패도 퇴로도 필요 없었다.

오직 적을 찌를 창만 들고 전진했다. 장군은 이천수와 차두리에게 길을 열게 하고 그 길을 따라 황선홍 안정환 설기현으로 하여금 성문을 열게 했다.

장군의 지략에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아주리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46년전 전투(1966년 북한과의 경기)의 악몽을 떠올렸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로 빠르게 움직이는 ‘붉은 모기떼’의 집요한 공격에 비참하게 무너졌던 그 때의 악몽이 다시 현실로 다가옴을 느꼈다.

장군도 역시 평소 병사들을 그렇게 훈련시켰다. 그 결과 중원을 지키는 최진철 송종국 유상철도 적의 공격 앞에서는 얼마든지 든든한 방어벽이 됐다.

축구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전략에 놀란 것은 성안에서 목이 터져라 성원을 보내던 백성과 전투를 지켜보던 수많은 외국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무모해 보였다.

‘이렇게까지 해도 패배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위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히딩크 장군은 ‘변명’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각오한 최후의 일격’을 선택했다.

싸우고 있는 병사에게, 심지어 성문을 지키는 병사(골키퍼)까지 나가 싸우라고 명령한 장수는 많았다.

그러나 성을 비우고 병사들을 모두 공격 일선에 내보낸 장수는 없었다. 1년 6개월을 함께 하면서 히딩크 장군은 누구보다 병사들을 믿었다. 그 믿음이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장군에게 18일은 내일이 없는 하루였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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