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에서 8강, 그리고 4강! 분명 ‘로마제국 아지리군단’답게 체력, 기술, 경험에서 우수했다. 막판에 힘이 부치기는 했지만 연장전까지 간 마당에 우리라고 지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 숨막히는 역전의 드라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한마디로 신명이다. 우리 문화의 원형질인 신명이 분출되고 있다. ‘신난다’‘신기’‘신바람’ 등은 곧바로 신명의 또 다른 표현. 이번의 신바람은 ‘붉은 바람’으로 갈아입고 한반도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예전에 붉게 물들인다고 썼다면 끝내 재판정까지 갔으리라!).
한국인의 마음 언저리에는 굿적인 그 무언가가 깔려 있다. 굿은 맺힘을 풀어내는 풀이이며 굿판은 해방의 구체적 발현처다. 그리하여 대동굿판에서는 사회적 응어리, 생리적, 심리적 옹이 등이 발산된다. 즉 신명이 일으키는 신바람은 해원의 성취감과 해방감의 발현인 셈.
태극전사들은 스타디움이란 거대 대동굿판에서 신바람을 일으킨다. 연전연승의 비밀은 분명히 붉은 신바람이다. 전사들이 불러일으키는 신명은 관중에게 태풍으로 밀어닥친다. 역으로 붉은 물결의 신명은 곧바로 전사들에게도 감염된다. 공동체의 신명은 굿의 신명을 통하여 얻어지고, 굿의 신명은 공동체적 유대없이는 생겨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리응원은 한국민의 역사문화적 전통이 일구어낸 거리굿이다. 그러하니 전광판으로 굿상을 차려놓고 굿판을 벌이는 한국인의 열광을 어느 외국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랴!
그동안 거리굿도 난장판도 모두 통제당하였다. 축제도 ‘그렇고 그런’ 상업적, 혹은 관제축제만이 주류였다. 심지어는 색깔조차 통제당하여 미술품조차 붉은색은 금기된 사회 아닌가. 축구팀도 연줄, 인맥이 중시되고 눈치보기와 줄서기, 선후배 구분짓기 따위가 만연됐다. 그 금기가 깨지자마자 거리굿이 비로소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통제된 신명이 마침내 옹이를 풀어내고 거리굿으로 분출되자 붉음의 물결은 가히 해일같은 가속도로 한민족공동체를 내몰고있다. 그런 점에서 히딩크와 태극전사들은 ‘신지핌’을 일구어낸 참으로 탁월한 ‘무당’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4강으로 간다. 아니 가고야 만다. 만에 하나 못 간다면! 그래도 좋다! 이미 우리 스스로 ‘1강’이다. 애써 얻어낸 신명의 ‘되살림’을 전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듬고 나갈지, 그것이야말로 월드컵 이후에 우리가 해내야 할 진정한 굿판 아닌가. 학연 지역 따위에 매몰된 구태의연한 작태를 오로지 대중의 자발적 열기, 밀어붙이는 저력으로 밀어낼 새로운 굿상을 준비해야 한다.
부산에서 대구로, 대전으로, 그리고 광주로 내려가는 신명의 폭발적인 붉은 해일이 요동치고 있다. 해외 동포의 눈물겨운 성원까지 포함한다면 한민족공동체는 저마다 신명에 감염되어 분명히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길 간구하는 것이다. 통일한국의 저력도 이 같은 신바람 없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이 도도한 붉음의 장엄한 미학, 엄청난 용트림 속에 분명히 새로운 한국적 사고, 한국적 희망이 신바람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지구촌으로 번져나가고 있으니, 이를 어찌 몇 줄 글로 모두 담아낼 수 있으랴!
주강현 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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