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를 걷어낸 논바닥에서 짚세기로 만든 공을 차던 어린 시절을 두고 축구를 좋아했다고 하면 누가 들어도 웃기 쉽다.그러나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고부터 축구팬이 되었다면 웃기에 앞서 머리를 갸우뚱해보일 분이 없지 않으리라 믿는다. 소쉬르의 언어 시스템론에 맞서 언어 게임론을 내세운 이 불세출의 논리 철학자가 실토한 바에 따르면 언어 게임론의 착상이 번개처럼 스친 것은 동네 축구장에서였다.
물론 큰 규칙이 엉성하게 있긴 있지만 실전에서는 그때그때 서로간에 새 규칙이 창출된다는 이 명백한 사실을 어째서 사람들은 주목하지 못했을까. 인간의 언어활동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어째서 사람들은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런 물음을 던질 적이면 어김없이 나는 축구를 떠올린다. 어찌 축구만이랴. 모든 경기란 원리적으로 그러하다고 누가 충고해도 별 도움이 될 수 없다. 만화와 추리 소설밖에 열중한 바 없던 비트겐슈타인도 이 축구만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혼자 멋대로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10일 새벽차로 대구에 달려가 그라운드 한구석에 앉아 있었던 것까지 비트겐슈타인의 핑계를 댈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월드컵이라는 세기적 장관을 내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얄팍한 계산이 앞섰던 것이니까.
그러나 정작 스스로 놀란 것은 내 관전법에 대한 새삼스런 확신이었다. 새로운 규칙의 무수한 발생과 전개과정의 그 현란함, 그 지속성, 그 긴장감이 그라운드를 기하학처럼 투시해 보이고 있지 않겠는가. 대체 이보다 투명한 현장감이 또 어디 있을까.
이번 월드컵 대회를 전쟁이라 표현한 사람도 있다. 세네갈의 승리를 보고 세계는 약소 민족의 자존심 회복을 말하기도 했다. 슬로베니아팀의 조국 소개 팸플릿도 그러한 사례이다. 그 어느 팀도 11명 이상은 허용되지 않는 이 전쟁은 90분만에 승부가 결정된다.
승부를 문제삼을진댄 나는 고대 희랍인 편에 서고 싶다. 페르시아와의 운명을 건 전투에서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머리도 몸뚱이도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이 신탁에 대해 희랍인은 신에게 항변했고 신도 이에 대해 불길하긴 해도 매우 완화된 신탁을 새로이 내보였다고 헤로도토스는 썼다. 한편 페르시아인들은 운명에 순종했다고 이 ‘역사’의 저자는 적었다.
페르시아인의 운명 순종관도 존경스럽지만, 희랍인의 저러한 항변이 한층 존경스러운 것은 웬 까닭일까. 16강이라든가 8강, 또는 무슨 ‘강’에 앞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목소리, 그 속엔 신에 대한 항변의 의미도 스며있지 않다면 어떤 설명이 적절할까. 시청 앞의 붉은 물결들 말이다.
6월의 호국 보훈의 달. 고개를 숙이면서 고개를 들어본다.
김윤식(문학평론가ㆍ명지대 석좌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