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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도 히딩크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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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도 히딩크 배워라

입력
2002.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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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자 조간신문은 예상을 넘어선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압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각종 게이트 의혹과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로 민주당이 자살골을 몇 개나 먹었으니 야당인 한나라당의 승리는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같은 날 열린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축구팀은 포르투갈 팀을 1대0으로 꺾고 대망의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방선거라는 정치게임의 승패가 일부 정치인들의 승패였다면 한국 축구팀의 승리는 전 국민의 승리인양 밤늦도록 전국이 축제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한국팀이 포르투갈팀과 대등한 경기를 벌였다는 사실과 특히 신기(神技)에 가까운 박지성의 결승골은 포르투갈 선수를 두 명이나 퇴장시킨 심판 판정의 껄끄러움을 압도할 만했다.

포르투갈전 승리로 거스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을 맡은 지 불과 1년6개월만에 온 국민이 염원하던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어 냈다.

히딩크 감독은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고 그를 대통령으로 영입하자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과거 대표팀 감독은 속사정이야 어떻든, 연고에 따라 일부 선수를 기용함으로써 대표팀의 사기저하 및 전력차질을 초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과학적인 체력훈련과 전술훈련도 있지만 히딩크 감독의 최대 공로가 연고나 정실에 구애받지 않고 최선의 기량과 능력을 갖춘 선수들을 각 포지션에 주전으로 배치한 사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실력과 전술은 물론 팀워크 역시 극대화되었다.

일부 기업에서는 히딩크 감독의 조직관리능력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선거 유세에서도 ‘히딩크 감독처럼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도 기업이나 스포츠와 달리 정치인들은 정부의 효율적 경영을 놓고 세계 일류국가의 정치인들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보수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자신과 경쟁상대 모두 정실 및 연고주의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그 점에서 조직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인재 발탁과 등용을 반복해 왔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정치적 격언이 있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이러한 행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통치자나 당 총재 개인에 대한 충성도와 연고에 따른 논공행상식 정실인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국정의 효율적 운영은 물 건너가고 정치적 지위는 돌려먹기 혹은 나눠 먹기식의 전리품이 된지 오래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행태에 신물이 난 국민이기에 ‘누가 정권을 잡아도 마찬가지’라는 냉소주의에 젖어 살풍경한 정치에 등을 돌리게 되었고 투표 기권률 52%라는 최악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이는 연일 한국팀 경기에 열광하여 경기가 있는 날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온 국민이 경기장으로 길거리로 뛰어나가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처럼 유권자의 반 이상이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싫다’는 식으로 정치에 강한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야당 역시 숙연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IMF위기때 경험한 것처럼 정치의 승패는 축구팀의 승패와 달리 한 나라의 국운을 좌우한다.

우리 정치인들도 이제는 진지하게 히딩크 감독을 본받아 연고주의에 구애받지 말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민족의 역량을 극대화하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히딩크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온 국민이 길거리로 뛰어나와 환호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유권자들 역시 정치인을 향한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역시 도덕성과 능력을 외면하고 지역주의나 연고주의에 휘말려 정치인들에게 투표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히딩크와 같은 정치인을 분별하고 선출할 수 있는 자질과 안목을 진정 갖추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히딩크와 같은 정치인은 국민이 스스로 키우고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강정인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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