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번에도 약속을 지켰다.한국인의 꿈이었던 월드컵 첫 승을 안긴 지 불과 2주 만에 거스 히딩크 한국 감독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앞두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해서 또 한번의 역사적인 밤을 만들어보자”고 공언했던 그의 말대로 꿈은 현실이 됐다.
월드컵을 3차례나 제패한 축구명문 이탈리아를 연장 승부 끝에 승리로 이끌고 월드컵 8강 고지를 밟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 앞에 선 히딩크 감독은 “한국은 이제 세계 축구계의 슈퍼스타가 됐다”며 한국 축구의 급속한 성장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전반 초반 한국이 먼저 1골을 잃은 상황. 월드컵 본선 10번의 경기에서 단 1패 밖에 기록하지 않았던 히딩크 감독은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수비수 대신 공격수 3명을 투입, 공격수 5명으로 전면공세를 편 끝에 후반 막판 극적인 동점골을 엮어냈다.
당시 상황을 떠올린 히딩크 감독은 “자칫 0_2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지만 당장 1_1을 만들지 못하면 기회가 사라질 지 몰라 선택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100분을 넘기는 연장 승부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압도 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부임 이후 줄기차게 그가 강조해온 체력훈련 덕분임을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원동력은 그의 지시를 잘 따라준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벤치에 있는 선수들까지 포함해서 한국선수 모두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전반전이 끝난 뒤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간격을 좁힐 것을 지시했고 전반 초반 페널티킥 실축 등의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잘 극복했다는 것이 이유다.
“심판판정이 한국쪽으로 기울지 않았느냐”는 외신기자들의 질문에도 그는 단호했다. “심판이 당시 상황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면서도 그는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없었다”라고 선을 그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그는 “간단한 와인 한잔이면 오늘의 승리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말한 뒤 “스페인과의 4강전에 대비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첫번째 목표인 월드컵의 완벽한 준비, 두번째 목표인 첫 승, 세번째 목표인 16강 진출을 이미 달성한 히딩크 감독은 “우리는 계속 전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또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그는 마음 속으로 ‘오늘 같은 짜릿한 밤이 또 있을 지 모른다’고 되뇌었을 지 모른다.
대전-정원수·최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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