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서 열린 월드컵 16강전 독일과 파라과이의 경기를 관전했다.월드컵 경기인가 싶게 자리가 텅텅 비었다. 50만 명의 인구를 생각하면 4만5,000명이 그 비싼 입장권을 사서 구경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 대표팀이 미국 및 잉글랜드팀과 평가전을 치를 때, 그 경기장은 꽉 찼다. 또 세계를 놀라게 한 백만 거리응원의 열기를 생각하면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남의 나라 팀들이 경기를 벌이는 개최도시에 가 보면, 붉은 악마의 색깔과 열기에 묻히지 않는 월드컵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수 천명의 외국인이 경기장뿐 아니라 여기저기 몰려다닌다.
‘Hiddink’라고 쓴 플래카드를 등에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는 화란인들, 16강 좌절을 분풀이라도 하듯 빨간 셔츠를 입고 ‘오 필승, 코레아’를 외쳐대는 러시아인들, 그래도 월드컵과 인연을 맺은 것이 즐거운 양 붉은 옷을 입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중국인들도 모자이크처럼 전국을 수놓고 있다. 단 며칠 동안이지만 도시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월드컵 경기를 통해 싹튼 국민의식의 변화나, 세계가 우리를 보는 시각의 변화는 그냥 한차례 끓는 냄비처럼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것들이다.
이런 월드컵효과는 보는 관점에 따라 수없이 많지만, 다음 세 가지 효과만은 잘 살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아시아인의 동류의식을 일깨워준 일이다. 축구라면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면서도 한국과 일본이 16강 동반진출을 진심으로 바랐던 사람이 한일 양국에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특히 축구를 좋아하는 젊은이들 가운데 그런 정서가 많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더 이상 ‘축구의 제3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경기와 응원은 경쟁하되 교류를 확대한다면 스포츠교류 이상의 양국문화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월드컵에서 소외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한일양국을 응원했다.
16강에서 탈락한 중국도 두 나라의 활약상에 환호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유럽 및 남미와 판이한 아시아 국가의 이러한 동류의식을 하나로 묶는다면, 스포츠분야는 물론 다른 여러 분야에서 협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둘째 효과는 서울만이 아닌 다른 10개 개최도시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월드컵의 관행이고 규정이다.
누구의 생각이든 ‘서울독식’의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모처럼 지방이 국제사회에 선보이고, 주민들이 변화하는 세계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이다.
비록 좌석을 채우지 못해 학생을 서포터스로 동원했을지라도 괜찮다. 학생들은 월드컵을 구경하면서 세계시민으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다.
또 그들의 응원을 받은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숫자의 외교관을 파견해도 불가능한 고마운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단지 걱정은 엄청난 돈을 들인 운동장이 서너 번 쓰고 난 다음 골치덩이가 되면 어쩌나 하는 일이다. 정부, 지역주민, 축구협회 등이 지혜를 모아야 할 일이지만, 정치 지도자들의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비전이 나왔으면 한다.
세번째는 바로 히딩크 효과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를 변두리 축구에서 선진축구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국민이 염원하던 16강 진출을 실현시켜 개최국의 긍지와 열기를 고조시켰다. 히딩크 리더십은 기업을 비롯해 곳곳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그를 한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하자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히딩크 지도력의 요체는 알고 보면 간단하다. 팀을 구성하는 데는 능력을, 운영하는 데는 마음을 주고 받는 의사소통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과연 정치에 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기업을 비롯한 각종 조직에서 좋은 효과를 발휘했으면 한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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