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를 꺾은 8강 신화가 이번엔 남한에서 꼭 재연될겁네다.”1966년 7월20일 새벽 2시30분 평양. 지직 거리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누르고 8강에 진출했다는 낭보가 전해지자 고요하던 평양시내는 일순간 ‘만세’의 물결로 뒤덮였다.
당시 남한의 국군체육부대 격인 2ㆍ8체육단(현 4ㆍ25체육단) 합숙소에서 동료 선수들과 얼싸안고 만세를 외쳤던 전 북한 축구 국가대표 선수 윤명찬(尹明燦ㆍ53ㆍ사진)씨는 그날의 감격을 서울에서 다시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한국이 첫 16강의 꿈을 이뤘을 때 거리를 붉게 물들인 환희의 물결은 북한이 8강에 진출했을 때와 똑같습니다. 북한은 당시 개최국도 아니었고 대형 전광판도 없었지만 그 고물 라디오가 전해준 소식에 인민들은 감동으로 하나가 됐습니다.”
그는 한국-포르투갈전을 집에서 TV로 지켜봤다. 후반 박지성 선수의 극적인 결승골이 터져 나오자 “잉글랜드 월드컵 4강에서 포르투갈에게 3-5 역전패를 당한 북한의 36년 전 한을 풀어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씨는 “뛰어난 체력, 최고의 지도자 등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한국이 본선에 겨우 올라온 이태리를 꺾을 확률이 70% 이상”이라고 내다봤다.
69년 국가대표, 92년 국가종합체육단 축구단장 등 북한 축구 역사의 산증인인 윤씨. 그는 한국전쟁 당시 홀로 월남한 부친을 찾아 98년 북한을 탈출, 중국을 전전하다 99년 4월 입국했다. 남한에서는 프로축구연맹 경기감독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북한 사람들도 응원하고 있을 테니 민족의 기개를 다시 한번 보여달라”며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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