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미국 대학에 안식년을 다녀 왔다. 이쪽 일에 코를 빠뜨리고 있다 부랴부랴 출국하여 그 쪽에 적응하려 하니 유학시절보다 더 어려웠다.특히 여기서는 못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거기에서는 매우 불편한 것들이 세 가지 있었다. 이것을 컴맹, 차맹, 골맹 ‘3맹’으로 부르기로 하자.
컴맹은 컴퓨터 까막눈을 말한다. 서울에서는 이메일을 받고 보내는 정도로만 컴퓨터를 활용했다.
컴퓨터를 산다거나 고장이 나서 고치거나 숫자와 기호가 많이 나오는 논문을 작성하거나 할 때에는 조교에 의존하였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일을 자기가 직접 해야 하니까 영락없는 컴맹으로 많이 엉겨야 했다.
차맹은 차를 운전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공부 마치고 귀국하면 차를 생활필수품으로 생각하여 차부터 사는 풍조가 부박(浮薄)하게 여겨졌다.
필자가 존경하는 고등학교와 대학의 은사 선생님들은 평생 차 없이 지내신다. 하여 근 15년을 차 없이 지내다가 나간 것이다.
미국에, 그것도 서부에 나가 보니 차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내가 운전면허증을 출국 하루 전에 따 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골맹은 골프를 못 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좁은 땅덩어리에 골프장을 만드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학자가 시간과 돈이 억수로 깨지는 골프를 쳐서 되느냐.
이런 생각에 골프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블루 칼라도 즐기는 데다가 예전과는 달리 유학생도 대부분 골프를 치고 있었다.
콜로라도에 있는 대학 동기, 포틀란드에 사는 고등학교 동기가 고집을 부리지 말고 골프를 배우라 했다
. ‘늙어서 테니스를 못해도 골프는 할 수 있다’ ‘골프가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제공할 것이다’ ‘미국에서 배워 가는 것이 돈 버는 길이다’등등.
처음 듣기에 가당찮은 이 훈수를 친구들이 진지하게 해댔다. 6개월을 뭉그적거리다가 결국 ‘파계’하기로 결심하고 나머지 6개월을 부지런히 배웠다.
안식년을 다녀온 후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타락했다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 평생 차 안 몰고 운동 안 할 것처럼 폼 잡더니 사람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전비(前非)가 있어서 유구무언이었지만 50세가 넘어서 타락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세계화 시대에 바다 건너 선진국에서는 ‘3맹’이 원시인이나 외계인으로 치부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컴퓨터와 차는 서민층에까지 확산되는 추세이다. 골프는 아직 위화감을 조성하는 비싼 부르주아 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골프 인구는 벌써 300만명을 넘어 섰다. 대기업의 과장만 되어도 배우러 들고 골프 연습장은 항상 만원사례다.
터무니 없이 비싼 골프장 이용료를 일본 수준으로만 낮추어도 골프가 선진국처럼 대중스포츠로 자리잡을 것이다.
골프장 이용료를 낮추는 정책의 핵심은 골프장 수를 늘리는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이 좁은 땅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발끈할 일만은 아니다.
현재 골프장은 건설중인 것까지 합쳐 대략 240개이다. 이 숫자는 일본의 10분의 1이다. 인구 대비로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고 면적 대비로는 5분의 2 수준이다. 퍼블릭 골프장을 많이 만들 여지가 있다는 얘기이다.
연초에 정부 일각에서 거론되었던 한계농지를 골프장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이 방안은 일찍이 독일과 일본에서 실시되었고 북구에서도 농업개방에 대비해 1990년대부터 시행되어 왔다고 들었다.
외국의 선례를 잘 살펴 보면 골프 소비자 선호를 반영하고 농가 이익을 보호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골프장이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생각은 우물 안 관념이다. 우리 국민이 굳이 다른 나라를 기웃거리지 않고 우리나라 안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안국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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