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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칼럼] 우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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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칼럼] 우리의 두 얼굴

입력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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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진출함으로써 마침내 우리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감격을 맛본 다음 날 아침 신문들은 일제히 두 개의 사설을 함께 실었다.50년이 아니라 5,000년 묵은 민족의 한을 말끔히 씻어준 듯한 태극전사들에 대한 찬사와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한 6·13 지방선거에 대한 논평이 그것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내면의 두 얼굴이 월드컵 경기장과 선거에서처럼 선명하게 대조적으로 비쳐질 수가 없다.

6·14의 감격은 축구경기에서의 승리 자체에서만 온 것이 아니었다. 선수들과 거스 히딩크 감독은 우리에게 강한 투지와 순발력으로 승리를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탁월한 팀워크를 통해 여유 있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지략의 중요성을 실증해 보임으로써 우리가 그처럼 갈구하면서도 정치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그 어떤 신선함과 자긍심을 한꺼번에 맛보게 해주었다.

히딩크 예찬론이 그의 강제 귀화와 정치 입문을 점치는 농담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이번 월드컵 16강 진출 과정을 통해 부상한 또 하나의 영웅은 우리 국민이다. 경기장에서 뿐만 아니라 큰 광장과 대로를 꽉꽉 메우며 열광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대~한민국’을 외쳐대며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는 우리 대중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를 놀라게 할 정도로 성숙했으며 승리의 태극전사들 못지않게 강한 인상을 전 세계에 심어주었다.

젊은이고 늙은이고 여당이고 야당이고 우리들 모두 속으로는 얼마나 애국적 정열로 불타고 있으며 신선한 돌파구만 마련된다면 그 정열이 얼마나 수준 높게 단결된 창조적 에너지로 분출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이번 월드컵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선거를 통해 드러난 우리의 모습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우선 선거전에서 드러난 추잡한 캠페인 양상이나 유세장의 텅 빈 모습들은 우리 국민이 아직도 자기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얼마나 추악한 짓을 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무책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각종 비리에 휘말려 있는 여당에 대해 가차없는 심판을 내린 반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에게 자치단체 수준에서나마 지지를 보낸 것 등은 우리 정치도 종전의 맹목적 지역연고주의의 족쇄에서 해방되어 유권자들이 냉엄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적 징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투표율이 50%도 되지 않은 것은 정치적 미숙과 무책임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수가 없다.

전과 달리 국가의 역할에 비해 민간의 자율적 활동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 역사 전반의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어떤 사람들로 정부와 의회가 구성되는가가 공동체의 운명을 가늠하는 결정적 요인이 됨에는 변함이 없다.

월드컵에 도취되어, 또는 단순히 정치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면 그것은 월드컵이라는 전투에 도취된 나머지, 또는 게을러서 국가운영 전략 구축은 아무에게나 맡기는 어리석은 행위가 되는 것이다.

지금 모든 국민의 관심은 8강 진출을 위한 18일의 대전 경기에 모아지고 있다. 우리는 8강 진출 만이 아니라 우승을 목표로 계속 힘을 모아야 하며 수입 선수도 없이 순수 우리 선수들만으로 구성돼 온 국민의 열광적 응원을 받고 있는 우리 팀의 정신력을 당해 낼 팀은 이탈리아 뿐 아니라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다. 승리를 확신하며 온 힘을 다해 우리 선수들을 뒷받침하자.

그러나 지금까지 경기가 보여주었듯이 경기 결과에 대해서는 사전 보장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경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 선수들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 앞에 우뚝 세웠으며 우리들 마음속에 오랜 세월동안 스며들었던 자괴감을 말끔히 씻어내고 그 자리를 자긍심과 자신감으로 대치해준 공을 이미 세웠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번 월드컵에서 얻은 자신감을 어떻게 축구의 8강, 4강 진출과 우승이 아니라 국가경쟁력 전반에서 세계 16강이나 8강의 대열에 들게끔 각자 자기가 맡은 영역에서 투지와 지혜를 발휘하느냐 하는 것이다.

히딩크식 경영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도 든다.

능력에 대한 충분한 점검이 없는 낙하산식 인사 관행이나 낭비적이고 불합리한 경영 방식 퇴치 등의 구호는 새로운 것이 아닌데,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왜 외국인이어야만 가능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우리의 두 얼굴 중 어느 것이 진정 우리가 될 것인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좋게 매듭짓게 되기를 바란다.

이인호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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