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이 확정되던 14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 30대 여성 10여명이 온몸을 던지는 듯한 격렬한 몸짓으로 “대~한민국”을 연호했다.이들의 기세는 주변을 단연 압도해가며 주변 수백 명 젊은이들의 응원을 이끌었다.
월드컵 열풍은 ‘아줌마’들도 집 밖으로 끌어냈다. 스포츠 경기, 특히 축구하면 남의 일로만 치부해 오던 30, 40대 여성들이 길거리 응원단에 대거 합
류하고 있다. 이달 4일 한국팀의 첫 경기 때만해도 응원인파 속에 간간이 눈에 띠던 30대 이상 여성들이 경기가 거듭될수록 급격하게 불어나 한국-
포르투갈전 때는 스탠드 뿐만 아니라 길거리 응원단의 당당한 주류로 자리 잡았다. .
■‘붉은 아줌마’가 뜬다
“우리요, 붉은 아줌마들이에요.”
한국-포르투갈전 때 서울 대학로에서 이웃 아줌마 7명과 같이 응원을 펼쳤다는 주부 김경희(39)씨는 “아이들, 남편 뒷바라지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린 기분”이라며 “이탈리아와의 경기 때는 이웃 10명과 같이 시청 앞 광장으로 달려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인사동에서 붉은 티셔츠를 고르던 정미희(35ㆍ여)씨도 “월드컵이 일상에 갇혀있던 에너지를 외부로 분출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특히 전업주부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만큼 맺힌 게 많았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18일 한국-이탈리아전을 앞두고 동창회, 친목회, 부녀회 단위로 붉은 아줌마 부대가 속속 소집되고 있다.
■아줌마도 축구 모르면 ‘왕따’
‘아이 교육’ 일변도이던 아줌마들의 대화 주제도 완연히 바뀌었다. 김선영(40ㆍ여·서울 혜화동)씨는 “요즘은 동네 아줌마들이 모이기만 하면 축구 이야기로 날 샌다”며 “축구를 알면 나이불문하고 대화가 통하고 모르면 ‘왕따’”라고 귀띔했다.
회사원 박준수(34·경기 과천)씨는 “축구를 몇 명이 하는 지도 모르던 집사람이 ‘오프사이드 뭐냐’는 등 자꾸 물어봐 귀찮아 죽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부부싸움의 양상도 거꾸로 됐다. 축구경기의 피해자가 종전 아내에서 남편들로 바뀐 것.
김재동(42ㆍ대구 달서구)씨는 “한국 경기 때 아내가 제사준비는 안하고 같이 TV를 보자길래 화를 냈다가 크게 다툴 뻔 했다”며 겸연쩍어 했고, 양모(39·서울 송파구)씨도 “말도 없이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길거리 응원을 가는 바람에 저녁을 굶어 밤중에 한바탕 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8강은 아줌마가 쏜다.
“8강이요? 아줌마가 나서서 안 되는 일 봤나요.” 온 동네 주부들를 ‘붉은 아줌마’로 만들고 있다는 극성 축구팬 정모(35ㆍ여·서울 목동)씨는 “우리나라 아줌마의 치맛바람 위력이면 8강 정도는 우습다”며 “18일엔 우리들이 나서 제2의 행주대첩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18일엔 아줌마들도 휴무를”, “아줌마가 앞장서 아이들 손잡고 거리로 나가자”, “붉은 치마를 입자” 등 거리 응원과 8강 진출을 독려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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