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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 나는 이렇게 응원했다 / 세대·계층 단절 넘어 "감격!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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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 나는 이렇게 응원했다 / 세대·계층 단절 넘어 "감격! 코리아"

입력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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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를 이끌고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찾은 70대 할머니, 열렬한 박수를 아끼지 않은 고사리손, 가슴으로 응원한 후두암 환자, 연일 계속되는 야근에도 마냥 즐거운 경찰관….경기장과 거리를 메운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열정은 고스란히 모여 한국의 힘이 됐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역, 계층, 세대를 뛰어넘어 하나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던 이들은 “감격의 순간에 동참했다는 기쁨에 아직도 가슴이 뛴다”며 “스스로도 인식 못한 잠재력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민국이라는 ‘걸작’ 모자이크의 한점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은 명망가도, 목소리만 큰 이들도 아니었다. 한국의 브랜드가치를 끌어올리며 국운상승을 이끌어낼 원천이 바로 이들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노소를 뛰어넘어 ‘우린 하나’

16일 탑골공원에서 만난 조영숙(趙永淑ㆍ76ㆍ도봉구 길음1동) 할머니는 “미국전 때는 상암동에서, 포르투갈 전때는 광화문 사거리에서”라며 응원이력부터 자랑했다. 그는 “주위에서는 말렸지만, 가기를 백번 잘했다”며 “젊은 사람들과 함께 뛰고 ‘대~한민국’을 외치니 50년은 젊어지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공무원 아버지를 따라 1월 을릉도로 이사한 박선영(朴善英ㆍ6ㆍ여)양. 붉은 색 옷을 입고 서툰 발음이나마 ‘오 필승 코리아’를 목청껏 외쳤다는 박양은 “서울에서 왔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했는데 같이 응원하면서 친해졌다”며 수줍은 미소를 얼굴 가득 띄웠다.

■궂은 일 마다 않고 ‘신화 창조’

서울 노원경찰서 방범순찰대 방종설(方鍾卨ㆍ44) 경위는 14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 응원 현장에 있었지만 근무를 서느라 경기는 제대로 못 봤다. “선수들은 멋진 경기로, 시민들은 열띤 응원으로, 나는 질서 유지로 16강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자부합니다.” 그는 “내가 업무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우리팀이 4강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 종로구청 청소행정과 이상호(李相灝ㆍ51) 계장. 4일부터 현장책임자로 쉴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민들이 신문지, 응원도구 등을 한 곳에 모아둬 작업하기 수월했다”며 “경기도 못보고 뒷처리에 정신 없지만 우리팀이 16강에 진출해 뿌듯하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병상에서 펼친 응원전

급성백혈병으로 고대병원에 입원중인 장은혜(張恩惠ㆍ23ㆍ여)씨는 월드컵을 앞둔 4월30일 발병, 꿈꾸던 월드컵 자원봉사자 일을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대신 병원에선 환자들과 함께 TV중계를 보며 열렬하게 응원했다. 장씨는 “빨리 나아 시청 앞 광장에 나가 목청껏 응원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같은 병원에서 편도선 후두암을 앓고 있는 김학묵(金學墨ㆍ63)씨는 “소리 못지르는 고통을 절감했다”며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큰 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고 종이에 쓴 소감을 내밀었다.

20년 만에 축구를 처음 봤다는 주부 김경자(金慶子ㆍ55)씨는 “오랜만에 보는 축구 재미 이상으로 그 동안 의사소통 통로가 꽉 막혔던 회사원 딸, 대학생 아들과 손잡고 시청앞에 나가 응원한 게 너무 좋았다. 축구가 가정사를 해결해 준 집이 많을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 A매치는 모두 봤다는 축구광 정승원(鄭丞原ㆍ25)씨. 부모의 반대로 축구선수의 꿈을 접은 그는 대신 지난해 ‘코팀파응원단’을 만들어 응원단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정씨는 “지금은 부모님의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다”며 “월드컵 이후에도 이 같은 열기가 계속됐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제가 하나되어 “대한민국”

서울 풍납중 3학년 박범수(朴凡秀ㆍ15)군은 평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담임 선생님의 ‘변신’에 깜짝 놀랐다. 학급 전체가 나가서 공동 응원을 하자는 학생들의 조심스런 제의에 담임 선생님은 “내일 모두 빨간 티셔츠를 가져오라”며 흔쾌히 화답했고, 잠실 유람선 선착장에서 함께 응원전을 펼쳤다.

지난 10일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대구월드컵 경기장을 찾았다는 교사 장세환(張世煥ㆍ42ㆍ대구 수성구)씨는 “월드컵이 온 국민을 이처럼 똘똘 뭉치게 할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며 “월드컵서 보여준 질서의식과 시민의식을 살려 한국사회를 업그레이드 시키자”고 제안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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