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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2)조릿대야, 괜한 미움 받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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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2)조릿대야, 괜한 미움 받았었구나

입력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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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면 키 작은 대나무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조릿대라고 부릅니다.산에서 볼 수 있는 종류여서 산죽이라고도 합니다.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 특히 저처럼 희귀한 식물들 조사하는 사람들은 산에 오르다가 조릿대 군락을 만나면 기운이 쫙 빠집니다.

조릿대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귀한 식물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렵게 찾아낸 식물도 주변에 조릿대가 자라고 있으면 곧 없어질 듯하여 마음이 아주 불안해집니다.

숲 속에 일단 조릿대가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작은 풀들은 도저히 견뎌내지 못합니다.

땅 위에서는 사람도 헤쳐 나가기 어려울 만큼 줄기와 잎이 빽빽하게 우거져 그 아래 식물들은 햇볕 한번 쪼이기 어려워지고, 땅속에서는 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엉켜 도저히 다른 식물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정말 무시무시할 만큼 위력적으로 숲 속을 점령해갑니다.

그래서 저는 조릿대를 미워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조사를 방해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연이란 섬세하고 품격있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런 무법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게다가 꽃잎 예뻐 보기에 즐겁기나 한 것도 아니고요. 모든 사람들도 다 저와 같은 느낌일 것이라고 의심 없이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한번은 야생동물의 생태를 연구하는 분과 지리산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조릿대 숲을 만나더니 아주 반가워 하는 것이었어요.

이유를 알고 보니 조릿대 숲은 그 귀한 야생동물들의 아주 중요한 서식처라는 것입니다. 야생동물은 이곳에서 집을 만들어 은폐도 하고, 열매나 잎을 먹기도 한답니다.

특히 겨울잠을 자고 난 뱀, 도마뱀 등은 제일 먼저 조릿대 잎에 맺혀있는 이슬로 며칠을 살다가 비로소 활동을 시작하고 곰 역시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이 잎을 먹고 기운을 낸답니다.

그동안 그토록 나쁘다고 생각한 조릿대의 이면에는 다른 생물들의 생존과 관련된 미덕이 있다는 것이 큰 깨달음처럼 마음에 깊이 찔려왔습니다.

자연의 세계에는 의미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이고 모두 사람의 작은 머리로 유용함과 불필요함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고보니 조릿대는 약도 되고, 차도 되고, 쓸모가 많더라구요. 조릿대란 이름도 조리를 만들던 대나무란 뜻이랍니다.

무관심 속에 선거가 끝나고 보니 서로 나쁜 편이라고 갈려 싸우던 대립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아무리 나빠 보여도 제가 조릿대를 미워한 만큼은 아닐 듯 합니다.

그래서 편견에 갇혀 보지 못했던 가치를 자연에서나 인간사에서나 다시 찾아볼까 싶습니다.

/이유미ㆍ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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